바농오름 정상에 펼쳐진
오름의 부드러운 곡선미
그림같은 목장길 지나면
등반로서 반기는 산수국
내리는 이슬비 운치 더해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해 살짝만 찔러도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 날씨였다. 실제 제주 산간에 최대 300㎜ 이상의 많은 비가 예상된 날이었는데, 정작 탐방객들은 "비가 오면 또 그런대로 좋다"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5년째를 맞은 '한라일보 에코투어'의 관록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6월 29일 진행된 한라일보의 '제5차 2019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는 제주의 오름과 목장길, 숲길을 한 번에 탐방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 같은 코스로 마련됐다. 남조로에서 시작해 바농오름~목장길~큰지그리오름~태역밭길~교래곶자왈~태역밭길~민오름~숲길~명도암 삼거리로 이어지는 코스다.

첫 목적지인 바농오름으로 가는 길에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개다래나무'가 참가자들을 반긴다.

길잡이로 나선 이권성 제주트레킹연구소장은 "개다래나무의 꽃은 나뭇잎 밑에서 핍니다. 꽃이 필 무렵 나뭇잎이 하얗게 변하는데, 가짜 꽃(僞花)으로 벌들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죠. 한낱 꽃이라도 생존본능이 있는 겁니다. 아, 개다래꽃은 통풍에 아주 좋아요"라고 했다.

교래곶자왈을 탐방하는 참가자들. 사진=강희만 기자

20분 정도 올라 바농오름 정상에 도착하니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시원한 바람과 함께 그림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큰지그리오름, 민오름, 절물오름, 안새미오름, 알바메기오름, 꾀꼬리오름 등이 여성의 젖가슴처럼 봉긋 솟아올라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했다.

이어진 목장길은 비교적 평탄해 참가자들이 바농오름에서 봤던 풍광을 머릿속으로 되뇌게 만들었다. 목장길에는 목초가 사방에 자랐는데, 사진에서만 봤던 어느 유럽의 아름다운 목장처럼 느껴졌다. 참가자들은 앞다퉈 사진을 찍기 바빴다.

개다래꽃

큰지그리오름을 오르는 길에는 파란 산수국이 반겨준다. 특히 산수국과 똑같은 색깔을 품은 나비가 등반로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마치 수국의 꽃잎이 흩날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예상됐던 많은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높은 습도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큰지그리오름 중턱에는 무덤 하나가 있었는데, 배롱나무 2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이권성 소장은 "배롱나무는 꽃이 오랫동안 피어서 돌아가신 분에게 꽃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 후손들이 무덤에 자주 심었습니다. 반대로 배롱나무의 껍질 없는 수피의 모습이 여성의 나신 같다고 해 양반집에서는 심지 않았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산부추

정상에 올랐지만 그새 드리운 먹구름으로 풍광을 제대로 만끽하지는 못했다. 다만 오름 바로 밑에 펼쳐진 교래곶자왈은 볼 수 있었는데, 울울창창한 모습이 아마존 숲을 연상케 했다.

오름을 내려와 점심을 먹는 사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참가자들은 비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많은 비가 아닌 이슬비가 내리면서 오히려 산행의 운치를 더해주는 것 같았다.

이번 코스 가운데 가장 높은 오름인 민오름(642m)을 오른다. "정글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라는 노래가 생각날 정도로 수풀이 우거진 탐방로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앓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참가자들끼리 "미끄럽다", "머리를 조심하라"고 배려하면서, 정상에 도달했을 때는 일행이 마치 전우애처럼 느껴졌다.

미국 뉴저지에서 에코투어에 참가한 변인순(67·여)씨는 "동생이 사는 제주에 한 달 일정으로 왔고, 주변에서 에코투어를 추천해 동생과 함께 참가하게 됐다"며 "미국도 원시림이 잘 보존돼 있지만, 제주의 자연은 미국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제주에 방문하는 지인이 있다면 꼭 에코투어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권성 소장은 "이번 코스는 장마철을 맞아 '비를 맞으며 가기 좋은 곳'으로 구성했다"며 "다행히 예보됐던 큰비가 아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이슬비가 내려 코스 구성의 의미를 더해줬다"고 평가했다.

한편 오는 13일 열리는 6차 에코투어는 남조로~물영아리 앞 마흐니숲길~의귀천길~수직동굴~마흐니오름~숲길~마흐니옆오름~사려니길~남조로 등의 코스로 진행된다. 송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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