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문화광장] 대체 불가능한 디지털 데이터 아트의 시대

[김준기의 문화광장] 대체 불가능한 디지털 데이터 아트의 시대
  • 입력 : 2021. 08.03(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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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유일한 원본의 가치, 즉 진본성과 일품성을 토대로 배타적 가치를 축적해왔다. 예술비평 용어로 쓰이는 아우라(Aura)라는 말은 예술작품에서 풍기는 고상하고 품격있는 분위기를 뜻한다. 발터 벤야민이 저술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전근대 시기까지의 수공예적인 예술생산이 기계적인 재생산 체제로 변화하는 순간을 갈파한 것인데, 이 책에서 아우라 개념은 기술복제시대 이전까지 예술을 존재 가능하게 했던 절대적 가치이다. 이렇듯 예술작품을 여느 생산품과는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아우라가 근대시대에 사진의 발명 이후 점점 고유의 에너지를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 벤야민의 논지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논의가 근대적 예술개념을 옹호하려고 새로운 예술생산 체제를 부정한다거나, 사진과 영화의 등장 이후의 현상을 일방적으로 환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20세기 중반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예술생산 방식, 그러니까 대량 생산 체제를 도입하는 예술,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결탁한 예술을 어떻게 성찰할 것인지를 예비적으로 논거한 것이다. '기술복제'라는 번역은 독일어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라는 말을 옮긴 것인데, 영어로는 'Mechanical Reproduction'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기술적인 혹은 기계적인 재생산'을 뜻한다.

원저자의 뜻을 정확하게 풀어보자면, '기술복제시대'라는 용어의 핵심은 인간의 손을 직접 거치지 않고도 '기술에 의해서 재생산이 가능한 시대'라는 뜻을 담고 있다. 기술.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향배에 관한 벤야민의 예측은, 그러나 디지털복제시대를 맞이하여 뜻밖의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 그 방향은 두 가지다. 1)디지털복제에 의해 원본의 아우라가 더욱 가치를 발현할 것이라는 쪽과 2)디지털문명은 복제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므로 독점이 아닌 공유의 가치를 창출한 것이라는 쪽으로 나뉜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이러한 입장은 대략 공존하는 듯했다. 어느 쪽이든 디지털문명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시 판이 바뀌고 있다.

메타버스는 현실을 대체하다 못해 현실과 가상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이라는 뜻의 NFT기술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뒤흔든다. '가상 화폐로 거래할 때 해킹을 막기 위한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은 예술작품 거래 수단으로도 쓰인다. 이 대목에서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뱅크시 작품의 컬렉터가 NFT 이미지 등재 후, 아날로그 원본을 없애버림으로써, 디지털 데이터의 값이 폭등한 것. 세상에나, '아날로그 원본'은 사라지고, '디지털 원본'만 살아남은, 가짜같은 진짜가 나타났다. 어느덧 가상화폐를 넘어 가상예술작품이 거래되는 시대다.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대체하다 못해 역전시키는 '대체 불가능한 디지털 데이터 아트'라니, 디지털문명의 근본 패러디임조차 뒤흔드는 이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김준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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