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이 유월에 갖는 단상

[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이 유월에 갖는 단상
  • 입력 : 2021. 06.23(수)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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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은 호국·보훈의 달, 숭고한 달이다. 의병의 날, 현충일, 민주항쟁 기념일, 6·25 전쟁일 등을 품고 있다. 호국과 보훈은 국가적으로 지대한 개념이다. 국어사전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는 게 호국이요, 그 공훈에 보답하는 게 보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체제와 국력, 그리고 국부(國富)뿐만 아니라 국민이 누리고 있는 개별적인 삶까지도 포함하는 가치다. 보훈은 이러한 호국에 바치신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는 것이다.

이 유월에, 나라 안 시국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코로나19는 일 년 반째 우리 곁에 머물며 아픔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어려움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맞서고 있으니, 언젠가는 다 같이 이겨내는 날이 올 것이다. 정작 큰 아픔은 따로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달에 대하는 호국과 보훈 때문이다. 세태가 이 둘을 어지럽히고 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똑같이 가져야 하는, 간단명료한 이 개념이 현실에서는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다. 이 성스러운 가치가, 한 나라 안에서, 소위 정의로운 시대에, 정파의 이해(利害)와 개인의 유·불리에 따라 휘둘리고 있다. 지금 우리는 확고히 정립된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풍요한 삶을 누리고 있다. 이는 근면한 국민성도 있지만, 훌륭한 지도자와 선각자, 경제인, 그리고 나라 지키기에 고귀한 피를 흘린 분들의 덕택이다. 그런데 그 기준과 의견이 판이하게 갈리고 있다.

필자의 '유월'은 집안 조상의 은음을 기리는 '보은의 달'이다. 오십여 년 전 유월, 현충일 무렵의 보리 수확을 추억한다. 뜨거운 볕살 아래서 보리를 베고, 묶고, 나르고, 타작하고, 알곡과 까끄라기를 집으로 옮겼다. 이 일에는 어른과 아이가 따로 없었다. 보리 까끄라기가 땀에 절어 씻지 못한 몸에 달라붙었다. 까슬까슬 살갗을 찔러대도 참았다. 다른 식구들도 함께 겪는 일이었다. 새 보리쌀로 지은 밥을 한 번쯤 조금이라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그때 가장의 식솔들에 대한 독선적인 혹사와 대우는 지금의 시각에서 이해도 용인도 어렵다. 그래도 이제 피해의식이나 원망 따위가 전혀 없다. 오늘날 우리의 삶이 그 지난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오늘을 견디는 힘을, 어르신들의 혹독한(?) 가르침과 희생, 그리고 근검과 지혜에서 얻었다. 보릿고개를 겪어보지 않은 필자의 아이들도 이 보은의 가치는 기꺼이 지키고 있다.

잘못된 사고는 바로잡기 힘들다지만 보국을 위해선 이를 가다듬어야 한다. 옛 성현들은, 사람의 성격이 쉬이 바뀌지 않음을 '삼년구미불위황모'로 비유했다. 개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붓의 재료가 되는 족제비 털) 못 된다는 뜻이다. 왜곡되고 고착된 사고가 딱 그 개꼬리 짝이다. 호국과 보훈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다르고, 이 개꼬리처럼 완고함으로 굳어져 있으니 큰일이다. 나라를 사랑한다면,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진정한 국가관을 갖추고 나라 살리기를 우선시해야 한다. 국민의식의 분열은 국가의 불행이다. 하물며 호국과 보훈에 대한 의견도 갈리고 있으니 그 불행이 오죽하겠는가. 요즘 나라 안팎으로 겪는 어려움이 이것뿐일까만, 유월의 눈과 가슴으로 보고 느끼는 호국과 보훈은 참으로 초라하다. 그래서 이 유월에 더 아프다. <이종실 사단법인 제주어보전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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