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그 많은 신들은 어디에…

[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그 많은 신들은 어디에…
  • 입력 : 2021. 05.12(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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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1만8000 신들이 산다고 한다. 창세신, 운명신, 곡식신, 무조신, 풍요신 등 다양한 신이 있고 각 마을마다 마을의 수호신인 본향당신이 있다. 천지창조의 신 천지왕과 저승과 이승을 지키는 대별왕, 소별왕, 그리고 바다를 지키는 용왕신과 집을 지키는 문전신, 사랑과 농경의 신 자청비까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모든 공간에 신들이 산다. 제주 뿐 아니라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는 그 나라의 신들이 다양한 풍습과 삶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요즘 그 많은 신들은 어디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3억3000 신들이 사는 인도는 매일 수십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며 전역이 아비규환 상태이다. 인도인 대부분의 이름도 3억3000 신들의 이름에서 따올 만큼 신과 함께 사는 인도이건만 현재 그곳은 마치 신조차 외면한 땅처럼 허망하다. 세계가 번식을 멈추지 않는 바이러스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고 그러는 사이 어느덧 마스크 너머의 일상은 익숙해졌다. 평범했던 일상은 이제 아득하기만 하고 백신이 주는 희망은 아직 살얼음 위를 걷는 듯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누군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희망을 놓지 않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코로나 전과 후의 삶은 달라질 거라 자조적으로 내뱉기도 한다.

신화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대부분 신비한 출생과정을 거쳐 고난과 역경을 통해 신격화하는 과정을 그렸다. 신들 역시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이 고난과 역경이라면 지금 우리의 고난은 무엇에 기인한 것이며 무엇을 위해 향하는 과정일까. 흑사병과 콜레라와 같은 지난 팬데믹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팬데믹은 인구 증가와 무리한 산업개발, 그리고 세계교류의 한계점을 넘어섰을 때 형벌처럼 바이러스가 창궐했었다. 그러나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전염병에 무뎌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코로나19는 발달된 과학과 의학을 짓밟으며 지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팬데믹의 원인은 인간에게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인간에게서 비롯한 바이러스가 인간을 해하고 있는 것이다. 신의 가호도 닿지 않는 듯한 현재 우리의 일상을 과연 어떻게 만회해야할까.

제주 신화 속 이야기는 단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신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리석거나 사리분별을 못하거나 악행을 일삼았던 신들도 있다. 허나 대립은 용서와 화합으로 귀결되고 각각의 장소에서 각자 맡은 본분을 다하며 먹고 살아가는 삶의 이치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 속에는 생명을 존중하고 잘못은 용서하며 함께 순응하며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가 담겨있다.

삶의 가치는 아주 사소한 것에 담겨있는지 모른다. 관계에서 비롯된 대립은 화합으로 현명하게 이끌고 과도한 욕망을 견제하며 자연에 감사하며 순응하는 일상을 사는 것, 당연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앞만 보며 살았기에 현재 우리는 동티가 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지금 우리가 돌아봐야하는 근본적인 물음은 그곳에 있을 수 있다. 아직 이 땅에 신이 머물고 있다면 간절히, 신의 가호가 닿기를 염원하는 봄이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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