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세계유산 용암동굴 8000년 전 '불의 숨길' 걷다

제주세계유산 용암동굴 8000년 전 '불의 숨길' 걷다
10월 두 번째 세계유산축전 앞둬 언론에 현장 공개
벵뒤굴·김녕굴·만장굴 비공개 구간 등 탐방 진행
총 21㎞ 3개 구간 개발… 야간 콘텐츠·유료화 시도
  • 입력 : 2021. 05.04(화) 22:25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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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축전을 앞두고 모처럼 공개된 벵뒤굴. 용암이 흐른 흔적이 바닥에 뚜렷하다. 이상국기자

그토록 뜨거웠던 적이 언제였을까. 화산활동으로 용암류가 흘러 내리면서 만들어진 8000년 전의 용암동굴은 그곳에 발디딘 이들에게 문득 그런 물음을 던졌다. 동굴 천장과 벽, 바닥엔 용암이 흐르다 먼저 식으며 굳어진 표면을 뒤로 하고 뜨겁게, 뜨겁게 저 바다까지 다다른 불길의 흔적이 살아 있었다.

도내 전 지역에 강풍과 호우 특보가 내려지면서 오전부터 빗방울이 흩뿌린 4일, 제주 언론에 용암동굴 비공개 구간이 공개됐다. 10월 1~17일 펼쳐지는 '2021 세계유산축전'을 앞두고 제주도세계유산본부와 세계유산축전 사무국이 미리 그 현장을 선보인 자리였다.

세계유산축전은 문화재청이 국내 세계유산 소관 광역·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공모를 벌여 선정된 결과다. 8월 충남 공주와 부여, 전북 익산을 시작으로 9월 경북 안동, 9~10월 경기 수원시, 10월 제주에서 개최된다. 국내에서 유일한 세계자연유산인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보유한 제주는 2년 연속 개최지로 뽑혔다.

이날 주최 측은 제주 동쪽에 있는 벵뒤굴, 김녕굴, 만장굴 비공개 구간의 문을 차례로 열었고 웃산전굴, 북오름굴 등을 포함하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상류동굴군 일대를 안내했다. 이들 동굴 내부는 세계자연유산축전 기간을 제외하면 접근이 안되는 곳이다.

벵뒤굴 천장. 자연이 빚은 미술품 같다. 이상국기자

김녕굴 내부. 바닥 흰모래, 천장과 벽면에 새겨진 불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이상국기자

다층 구조의 또 다른 김녕굴. 커다란 입을 벌린 동굴이 위·아래에 나란히 붙어 있다. 이상국기자

벵뒤굴은 이번에 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로 쭉쭉 뻗은 삼나무 숲길을 한참 걸어 쓰러진 나무를 피하고, 송전탑 아래를 지나니 비로소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총 길이 4481m인 벵뒤굴은 주굴과 가지줄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사방으로 마구 뻗은 미로형 동굴로 알려졌다.

동굴 내부 탐험이 허락된 인원이 제한된 탓에 일부에 한해 입장이 이뤄졌다. 안전모를 써도 동굴 천장에 몇 차례 머리를 부딪힐 만큼 좁고 낮은 통로를 통과해야 했고, 헤드랜턴에 의지해 칠흑 같은 어둠을 헤쳐가야 했다. 내부는 용암이 흘렀던 길이 또렷했다. 밧줄을 꼬아놓은 듯한 바닥의 '무늬'는 자연이 빚은 조각품이었다.

웃산전굴과 북오름굴 사이에 있는 상류동굴군 일대 용암교도 찾았다. 용암교는 나중에 흐른 용암의 천장이 무너지고 남은 부분이 다리 모양으로 보이는 것을 말한다. 조금만 걸음을 옮기면 차량들이 달리는 도로와 이웃한 땅에 약 만년에 달하는 지질의 역사가 숨쉬고 있다.

제주 사람들에게 김녕사굴로 더 익숙한 이름이면서 조선시대 '탐라순력도'에 '김녕관굴'로 소개된 700m 길이의 김녕굴도 개방했다. 국내 동굴 최초의 천연기념물인 김녕굴 초입에는 동굴 생성 시기부터 수천 년 세월 동안 바람 등을 타고 제주바다에서 밀려든 모래가 하얀 눈처럼 쌓여 있었다. 남쪽으로 더 걸어 '용암 폭포'를 타고 넘으면 동굴의 막장에 다다른다. 주굴을 빠져나와 오른편 좁은 길로 가면 다층 구조의 또 다른 김녕굴을 마주하게 된다. 커다란 입을 벌린 동굴이 위·아래에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으로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들 지점을 포함해 이번 축전은 '조우'를 주제로 거문오름에서 월정리까지 약 21㎞에 걸쳐 '불의 숨길-만년의 시간을 걷다' 3개 구간을 개발했다. 1~2구간은 사전 신청을 받아 1시간 간격으로 종전보다 여유있게 운영되고 3구간은 예약 없이 탐방할 수 있다. 만장굴 전 구간 탐사대, 특별탐험대, 유산순례단 등은 별도 선발 과정을 거쳐 꾸린다. 야간 프로그램인 '한라산 어승생악' 나이트 워킹을 신설했고, '세계자연유산 탐험버스' 등 유료화 프로그램도 도입한다. 6월 초 세계유산축전 홈페이지 오픈 이후 순차적으로 참가자 모집이 이뤄진다.

웃산전굴과 북오름굴 사이에 있는 상류동굴군 일대 용암교. 나중에 흐른 용암의 천장이 무너지고 남은 부분이 다리 모양으로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상국기자

세계유산축전 기간에 공개되는 만장굴 비공개 구간 일부. 이상국기자

김태욱 총감독은 "2020년도 사업의 문제점과 한계를 보완해 희소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콘텐츠로 구축하려 했다"면서 "앞으로 세계자연유산마을과 지역민 주도형 콘텐츠 개발에 집중하고 미래 세대와 함께할 수 있는 교육적인 콘텐츠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세계유산축전이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비공개 구간을 탐방하는 '특별한' 기회 제공을 넘어 후대에 전할 제주 섬의 가치를 확산, 공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세계자연유산 용암동굴계가 TV 예능 프로그램 속 원시적 배경으로만 소비되기엔 동굴 밖의 제주 개발 이슈가 첨예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불의 숨길'을 걸으며 우린 다시 뜨거워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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