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주여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김양훈의 한라시론] 주여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 입력 : 2021. 04.29(목)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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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해처럼 4월이 다 저물었다. 그해 1901년 이후 120년 만의 올해 신축년 4월은 두 시기의 사건을 이중노출로 담은 활동사진과 같다. 그 파노라마에는 신축년항쟁과 4·3항쟁 와중에 악행을 저질렀거나 선행을 베풀었던 인물들이 스쳐 지나가고, 피 묻은 십자가의 파편들이 회오리처럼 어지럽게 날린다.

천주교의 교폐에 분노해 들고 일어났던 신축년항쟁에 이어 4·3항쟁의 광풍이 휘몰아친 것은 채 50년이 되지 않은 1948년이었다. 이번에는 서북청년단이 학살의 주역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한경직이 세운 영락교회의 십대 나이 학생회와 이삼십대의 청년회 소속이었다. 신축년항쟁 당시의 선교사들이 고종 황제로부터 '여아대(如我待)’라는 특권을 부여받은 파리외방선교회 소속이었다면, 영락교회의 든든한 뒷배는 해방 전 서북 지역 전교를 담당했던 미국의 북장로교였다. 월남한 서북출신 기독교인을 대표하던 한경직은 영어 실력이 뛰어나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통역을 전담했다. 특히 그는 프린스턴 신학교 동기 동창과의 학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선교사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신축년항쟁이 일어나기 두 해 전 제주에 선교의 첫발을 내디딘 파리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은 제주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섬나라의 무속신앙을 이단으로 규정할 뿐 아니라, 제주의 전통문화와 유교제례에도 무지했다. 김원영 신부는 제주의 야만적인 풍속과 미신을 교정해야 한다며 수신영약(修身靈藥)이란 교리 책자를 만들어 선교에 나섰다. 수신영약이란 말 그대로 ‘몸을 수양하는데 필요한 명약'이란 뜻이다. 관아의 규율을 도외시하고 민중의 생활양식을 깡그리 무시한 후과였을까? 신축년항쟁의 불길은 김원영 신부가 사목하던 한논성당에서 촉발됐다. 그것은 현기영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에 자세하게 묘사된 오신락 노인의 치사사건이다. 그 이후 항쟁의 전개과정은 참혹했다.

그리고 반세기 만에 이번엔 '빨갱이섬'란 누명이 제주에 덧씌워졌다. 월남한 서북출신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공산주의자들을 악마로 규정하고 지상에서 전멸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전투적 반공주의였다. 한경직은 공산주의자를 '요한계시록'의 적룡(赤龍)으로 불렀다. 사탄이란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 신자들을 향해 물었다. “이 괴물을 벨 자가 누구입니까?”

1948년 11월 17일 계엄령 선포와 함께 서북청년회는 군경에 추가 투입됐고,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서북청년회만으로 구성된 특별중대까지 나서며 대대적인 방화와 학살이 벌어졌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후였다. "그때 공산당이 많아서 지방도 혼란하지 않았갔시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돼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그러니까니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됐지요." 1982년 김병희가 편저하고 규장문화사가 발간한 책 ‘한경직 목사’에서 한경직이 한 말이다. 사죄의 마음은 없어 보인다. 칭찬을 받아야 할 청년들이 오히려 미움을 사게 돼 안타깝다는 소리로 들린다.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사랑의 송가! 이토록 당신을 믿고 칭송하는 저들이 마을을 불태우며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고문할 때, 주여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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