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 무릅쓰고 제주인 지켜낸 진정한 법조인

누명 무릅쓰고 제주인 지켜낸 진정한 법조인
[제주4·3 제73주년] (중)격동의 역사 '제주인의 변호인' 박철
  • 입력 : 2021. 03.30(화) 15:44
  • 백금탁기자 haru@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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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의 변호인' 박철 변호사(사진 왼쪽)와 2017년 정부로부터 받은 납북자 결정서. 그는 제주 구좌읍 김녕리 출신으로 4.3 당시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불사하고 광주지방법원 법정에 선 억울한 제주인들을 동료 변로사들과 함께 대변했다.

4·3 당시 동료 변호사들과 광주고법 118명 무료 변론
6·25전쟁때 납북 행방불명… "역사 재조명 이뤄져야"
아들 부친 찾겠다 장교 입대 험난했던 가족사 면면히


일제강점기와 제주4·3, 그리고 6·25전쟁을 거치는 격동의 한국역사 한가운데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제주사람들의 변호인을 자처한 제주인. 제주도 구좌읍 김녕리 출신 박철 변호사(1913~1950)의 이야기다.

그는 4·3 당시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낯선 땅, 광주법원 재판대에 선 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도 빨갱이라는 모욕을 들으면서도 고향사람들을 지켜내려했던 진정한 법조인이다.

4·3이 발발한지 올해로 73주년이다. 지난 29일 서귀포시에서 만난 박용창(64)씨는 할아버지 박철 변호사를 기억하며 4·3의 의미를 되짚는다. 올해 4·3 특별법 개정이 이뤄지며 희생자와 유가족뿐만 아니라 이들을 음양으로 도움을 줬다는 대가로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커다란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또다른 피해자로서, 역사적으로 재조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한국인을 변호하는데 힘을 쓰셨고, 해방 이후에도 귀국해 돈 없고 힘없는 남로당 출신들, 죄 없는 4·3사건 수형자들을 무료로 변론하셨다. 그 대가로 6·25전쟁 당시 납북되셨는데, 여러 경로로 생사를 확인해 봤지만 납북과정에서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정부로부터 조부의 월북이 아닌, 납북 최종 확정을 받은 것은 2017년 4월 27일이다. 67년 만의 일이다. 4·3은 개인적으로도 우리에게 아픈 가족사를 남겼다."

서울제주도민회가 2002년 발간한 '서울제주도민백년사'에 박철 변호사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4월 서울 종로의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오건일 변호사(납북, 서귀포 남원 위미)와 장공우 등 재경 유지들과 함께 지금의 제주도민회의 모태인 '제우회(濟友會)'라는 친목단체를 발족시켰다는 내용이다.

국민대 교수 시절의 박철 변호사(사진 아래 가운데).

아울러 백년사에는 "박철 변호사는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오사카에서 변호사를 개업해 교포의 권익옹호에 힘썼고 해방후 서울에서 변호사, 국민대 교수, 대동흥업주식회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4·3 사건 관련자 118명이 광주형무소로 이관된 후 같은해 10월 광주지법에서 공판이 열리게 되자 오건일 변호사 등 5명과 함께 광주로 내려가 변호활동을 펼쳤다. 현지에서도 이덕우, 김재천(함덕) 변호사까지 움직여 이 사건을 변론하도록 조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억울한 이들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 변호사보다 정치인을 꿈꾸며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북제주군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는 내용도 있다.

한 가족의 가장이자 2남4녀중 집안 장손이었던 박철 변호사의 납북사건은 가족에게 크나큰 그늘을 드리웠다. 박용창씨는 조부의 윗대로 3대가 독자인 손이 귀한 집안에서는 대가 끊길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컸다고 했다. 조부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군에 입대한 아버지(박동광)도 군장교를 지내면서도 조부의 '납북'이라는 '낙인'으로 결국 소령으로 예편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박용창씨는 "가족과 곳곳에 남겨진 기록들이 할아버지의 굴곡진 삶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라며 "4·3 희생자과 유가족 이외에도 그 뒤편에서 저희 할아버지처럼 이들을 돕고 지원했던 주변의 이야기도 새롭게 조명돼야 할 때"라고 말했다.

도내 4·3관련 단체에서 확인한 결과, 박철 변호사에 대한 기록은 제주출신이라는 내용도 없이 '제우회' 결성에 앞장섰다는 기록만 한줄 남아 있을 뿐이다. 역사의 음지에 있는 분들에 대해 시간을 두고 찬찬히 드려다봐야 할 대목이다.

박철 변호사의 손자 박용창씨. 그는 올해 4.3 특별법 개정으로 그동안 가슴 속에 묻어뒀던 할아버지의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음양으로 4.3피해자들을 도왔던 주변 인물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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