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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눈 가리고 용기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입력 : 2021. 03.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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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년 시절의 너'.

시즌2까지 방영되며 뜨거운 화제성과 함께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드라마 '펜트 하우스'를 보지 않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저히 보지 못하고 있다. 시즌1이 시작했을 때 호기심에 몇 화를 봤다가 그만 경악을 하고 말았다. 이 드라마 속에는 온갖 종류의 폭력이 너무나도 심각하게 등장하고 전시를 넘어 심지어 과시 되고 있는데 그 잔인함과 장식성이 도를 넘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과연 이 과도하고 여과 없는 폭력 장면이 방영된 이후 그 상황과 인물들을 어떻게 해결 하려나 궁금해서 몇 화를 더 봤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이 드라마는 자극 이후의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조금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지금 이런 끔찍함을 즐기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소 절망적인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마라 맛이다, 궁금해서 안 볼 수가 없다' 같은 이야기들에는 조금도 공감을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이 드라마에서는 성인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청소년을 죽인 사실이 여과없이 전시되었고 그것은 반전으로 장식됐다.

창작물에서 폭력을 다루는 일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액션이나 전쟁 영화 같은 장르 영화의 외피를 빌려 입은 영화 속의 장면들 앞에서도 질끈 눈을 감는다. 폭력을 장면으로 시각화 한다는 것은 의도치 않았어도 누군가의 상처를 굳이 건드리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서사 속에 녹여낸 폭력이라는 말을 여전히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들은 이해는 하지 못할지언정 마음에 상처가 아닌 다른 모양새로 간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해 봤는데 내게 그 고통의 넘김을 가능하게 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연민'인 것 같다.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나쁜 것을 넘어 못된 지점은 작가가 인물에게, 인물이 상대에게 자극을 위한 기능만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쉽게 말해 이 드라마는 영혼이 없는 대사와 관계들로 점철되어 있다. 작가는 배우를 악용하고 인물은 상대를 고용한다. '악역 인데 불구하고 짠하다' 는 이 드라마에 대한 호의 감상은 그 악역을 연기하는 배우의 경지를 감탄하는 찬사 이상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본 중국 영화 '소년 시절의 너'역시 학교 폭력에 처한 10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이 영화는 교우 관계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뿐만 아니라 입시라는 교육 제도 안에서 발생되는 시스템의 폭력, 계급과 시선의 폭력 등 다양하고 무방비한 상황에 노출된 10대 후반 청소년들의 상황과 처지를 복합적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 첸니엔을 연기한 배우 주동우의 훌륭한 연기에 힘입어 이 고단한 이야기는 관객을 설득하고 말 그대로 연민을 자아낸다. 영화의 장면인지, 현실의 뉴스인지 갸웃거릴 정도로 가슴 아픈 상황을 연이어 목도하며 들었던 안쓰러운 마음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감정이었다. 세상으로부터 내몰린 처지의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지켜주는 영화 '소년 시절의 너'는 '적어도'를 위해 '끝까지'를 감당하는 영화다. 그것은 인물이 상대를 대하는 그리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나의 처지 뿐 아니라 상대의 처지를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자 하는 태도는 또한 이 영화의 연출자가 자신이 만들어 낸 인물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려움과 괴로움에 처한 인물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보겠다는 용기와 그것을 자극으로만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이 영화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 무척 다행이었다. 심지어 이 영화는 다소 교훈적인 마무리를 자처한다. 아마 관람 후 의아한 심정을 지니게 되는 관객이 여럿 되리라 생각되는 지점이다.

'소년 시절의 너'는 영화의 엔딩에서 이를테면 본편의 감상을 다소 해칠 수 있는 선택을 하는데 나는 그 지점이 이 영화만의 용기라고 생각해 좋게 볼 수 있었다.

결국 훌륭한 창작자가 자신의 결과물을 내어 놓는 데에는 용기가 따르기 마련이다. 물론 다른 것을 내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자극적인 양념을 칠 수도 있고 화려한 포장을 두를 수도 있으며 남이 쓰던 그대로를 베껴서 차려 낼 수도 있다. '팔리기만 한다면'과' 맛있기만 하다면'의 세상에서 그래도 진짜의 마음을 들킬 수 있는 상대를 애써 찾아가는 일은 대단히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좋은 창작물을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는 이들의 수고를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고단함이 좀 더 발견되고 오래 소비되기를 바란다. 김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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