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달 21개 기관 진상품에 제주 선인들 고통이

열두 달 21개 기관 진상품에 제주 선인들 고통이
제주문화원, 조선시대 제주 최초 관찬 읍지 '제주읍지' 역주 발간
제주읍·대정현·정의현지 나눠 구성… 진공 등 경제 부분 기록 세밀
2~9월 전복·표고·치자 등 바치고 10월 후엔 산귤·금귤·청귤·갑마 등
  • 입력 : 2021. 03.22(월) 17:48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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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에서 상납하는 공물(貢物)은 시기와 대상에 따라 그 품목이 달랐다. 제주목사가 임지에 도착했을 때는 백랍, 모감주나무 열매, 진피, 귤협, 비자열매, 멀구슬나무 심지, 탱자, 귤나무 잎, 후박 등 18종의 특산물을 중앙에 올려 보내도록 했다. 2월부터 9월까지는 복(鰒), 오징어, 표고, 엄나무 껍질, 치자, 유자 등을 봉진했다. 10월 이후엔 감자(柑子), 산귤, 동정귤, 금귤, 청귤, 체임마, 세공마, 갑마, 제향흑우 등으로 품목이 바뀌었다. 관아의 성격에 따라서도 봉진 물품을 구분했다. 중앙정부의 사복시에는 말안장을, 상의원에는 말총과 연강목을 각각 바쳐야 했다. 일 년 열두 달, 21개 기관에 납품해야 했던 이들 진상품을 통해 제주 선인들의 고통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된다.

개원 이래 제주 향토사료 발굴 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제주문화원(원장 김순이)이 이런 내용이 담긴 '제주읍지(濟州邑誌)' 역주본을 발간했다. 한문으로 편찬된 자료를 우리말로 풀고 주석을 단 것으로 240여 년 전 제주가 처한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다.

1785~1793년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읍지'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제주 최초의 관찬 읍지다. 관찬 읍지는 18세기 후반 이후 중앙조정에 의해 8도의 군현이 동일한 체제로 작성해 펴낸 읍지를 말한다.

이 같은 '제주읍지'는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에 대해 '제주읍지', '대정현지', '정의현지'라는 이름을 따로따로 부여해 각각의 독립된 읍지가 들어 있는 체제로 짜였다. 그중 '제주읍지'는 방리, 도로, 건치연혁, 군명, 형승, 성지, 관직, 산천, 성씨, 풍속 등 40조목으로 구성됐다. '대정현지'에는 '제주읍지'의 40조목에 비해 방물, 발참, 수군, 전선 조목이 없고 역원을 역과 원으로 구분해 총 37조목을 담았다. '정의현지'도 '대정현지'와 마찬가지로 방물 등 4개 조목이 없는 대신 능침을 추가한 37조목이 제시됐다.

특히 '제주읍지'는 사찬인 '탐라지' 등과 비교해 진공, 조적, 전세, 대동, 균세, 봉름과 같은 경제적인 부분이 매우 세밀하게 기술되어 있다. 진공의 경우도 언제, 어느 곳에 바치는지 구분해 그 품목을 일일이 적었다.

역주자인 백규상 제주문화원 사무국장은 "이 책에는 제주의 자연환경으로부터 풍속, 인물, 시문에 이르기까지 제주지방의 특징이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면서 "17세기 들어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활발한 편찬을 보인 읍지류의 전형"이라고 밝혔다. 말미엔 원문을 확인할 수 있는 영인본을 수록했다.

최근 제주문화원은 '역주 제주읍지'와 더불어 '제주도금석문집 Ⅲ', 사진자료집 '공감 5080', '기억으로 보는 제주도 생활문화 3', '제주문화 26호'를 나란히 펴냈다. 비매품. 연락처 7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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