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퇴계 영정 찾기로 시작된 초상화 이야기

[책세상] 퇴계 영정 찾기로 시작된 초상화 이야기
배한철의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
  • 입력 : 2020. 03.20(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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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고 말한다. 옛 초상화도 그에 견줄 수 있다. 글자로 못다한 우리 역사 속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문화재 담당 기자로 현장을 누벼온 배한철의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는 '초상화의 나라' 조선 시대를 중심으로 역사의 단면을 들여다본 책이다. 오늘날 서울시장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지녔던 한성의 판윤, 청백리도 탐관오리로 변하게 하던 평안감사 지위 등 다채로운 초상화 이야기를 더해 3년 6개월 여만에 개정증보판을 엮었다.

저자는 2014년 퇴계 이황을 재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쓰면서 초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가 늘 접하는 천원권 지폐에 담긴 퇴계 영정이 이유태 화백의 상상화라는 사실을 새삼 인식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영정 말고 실제 퇴계의 초상화가 존재하지 않을까란 호기심에 자료를 뒤졌지만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일제강점기 사람인 구도 다케조가 소장한 퇴계 초상화가 있었다. 그 초상화 속 퇴계는 특이하게도 사무라이 풍을 하고 있다. 퇴계의 학문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 성리학의 뿌리가 되었고 일본인들이 이황을 특별히 흠모했던 영향으로 풀이된다.

영정이 사라진 역사 속 인물은 또 있다. 충무공 이순신이다. 문헌을 뒤져보면 충무공의 얼굴을 묘사한 기록이 일부 발견된다. 그 기록은 5대손 이봉상, 7대손 이달해의 인상과 흡사하다. 그동안 초상화가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김유신은 국회도서관에서 찾아냈는데 1926년 출간된 '조선명현초상화사진첩' 맨 첫 장에 실려있었다.

초상화는 가려졌던 사실도 드러낸다. 드라마 등에는 내시들이 뿔 없는 관모를 쓰고 흉배 없는 관복을 입은 모습이 나오지만 선조 때 내시였던 김새신 초상화는 그와 달랐다. 수염만 없을 뿐 일반 문신과 똑같은 차림이었다. 생각정거장. 1만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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