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엽의 한라시론] 나무가 주는 가장 큰 혜택은 치유입니다

[성주엽의 한라시론] 나무가 주는 가장 큰 혜택은 치유입니다
  • 입력 : 2019. 10.24(목)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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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정문 옆에 있는 백등나무에서 하얀 꽃 몇 송이가 보입니다. 10월말인데 4월에 피는 꽃이 보이니 이상한 일입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제철이 아닌 초가을에 꽃이 피어난 것일까요. 며칠이 지나 꽃이 지고 새로 난 이파리들이 보입니다. 새로 나온 꽃과 이파리를 보고 관람객 분들은 온도가 높아서, 지구온난화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나름 다양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나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씨앗입니다. 지금 꽃과 이파리가 새로 나온 이유는 거센 태풍으로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등나무가 죽음의 위기를 느꼈기 때문에 종족보존의 본능으로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꽃을 피워야 씨앗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 여름 무더위로 지친 나무들이었는데 여름에 제주를 찾아온 세 개의 태풍으로 죽음의 위협을 느끼고 안간힘을 내어 꽃을 피운 것입니다.

태풍이 지나고 난 후 얼마 지나 나무들을 보니 이파리는 상처투성이가 돼 있고 열매들은 바람을 견디다 못해 떨어져 안쓰러움의 한숨이 나옵니다. 전쟁터같은 태풍을 빠져나와 지친 모습이지만 나무는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무들은 아픔이 많을수록 그 연륜을 몸에 새기며 뿌리를 더 단단하게 내려 내일을 위한 희망과 노력으로 아름답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10월에 핀 등나무 꽃을 현재만으로는 이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8, 9월 태풍이 지나간 시간과 흔적을 이해하지 않으면 도저히 새로 난 꽃과 이파리를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시간을 통해 현재를 이해해야 합니다. 미래로 가려면 과거를 알아야 합니다. 과거를 알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힘든 시간의 아픔과 고통을 기억으로 남겨 다시는 아픈 경험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반복한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나무도 나이테에 힘든 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을 것입니다.

올해 불어 닥친 태풍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받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태풍이 불 때 약한 부분을 알 수 있듯이 드러난 단점을 보완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제주 곳곳에 있는 오래된 나무들을 보며 그 영혼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며 우리와 함께 해 온 그들이기에 그들과 함께 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무는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까이 할수록 깨달음을 주고 마음에 평안을 주며 치유해줍니다. 생각하는 정원이 많은 우여곡절 끝에 어려움을 극복하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나무 때문입니다. 아버지도 아들도 정원가족들도 나무들과 함께 하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그 시간 속에 생채기가 아물며 더 단단해졌습니다. 나아가 나무가 준 깨달음과 치유의 과정들이 열매가 되어 몇 권의 책으로 남겨 놓게 됐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 어려움을 극복하는 제주인들이 돼주시길 소망합니다. 제주의 나무들이 그 힘을 보태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 옆에 자리하고 있던 오래된 나무를 만나 그 옆에 잠시 머물면 나무가 많은 이야기를 전해줄 것입니다. <성주엽 생각하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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