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무소서 겪은 여순항쟁… 제주4·3수형인 '감격'

형무소서 겪은 여순항쟁… 제주4·3수형인 '감격'
19일 여수서 '71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추념식'
오희춘 할머니 참석… "이런 날이 올줄 몰랐다"
4·3유족회와 도민연대 100여명도 참석 뜻 모아
  • 입력 : 2019. 10.19(토) 12:27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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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와 여순사건 지역민 희생자 지원사업 시민추진위원회는 19일 오전 11시 여수시 이순신광장에서 '제71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을 개최했다.

전남 여수시 일대에 사이렌 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4·3 당시 제주도민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면서 촉발된 '여순항쟁'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소리다.

 여수시와 여순사건 지역민 희생자 지원사업 시민추진위원회는 19일 오전 11시 여수시 이순신광장에서 '제71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추념식에는 여순항쟁 유족과 시민은 물론 4·3희생자유족회와 4·3도민연대 등 제주에서도 100여명이 참석했다. 여순항쟁이 제주4·3이 낳은 또 다른 비극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함께 연대해 대응하자는 취지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동백꽃'을 상징으로 뱃지 등 기념품을 제작하고 있다.

 

올해 '공소기각' 판결을 받고 수십년 억울함을 풀어낸 4·3수형생존인 오희춘(89) 할머니도 이날 추념식에 참석했다.

올해 '공소기각' 판결을 받고 수십년 억울함을 풀어낸 4·3수형생존인 오희춘(89) 할머니는 "살아서 여순항쟁 추념식에 참여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1948년 전주 형무소 수감 당시 여수와 순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여순항쟁은 초기부터 알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형무소 내 죄수복 제작 공장에서 같이 일도하고, 밥도 먹으며 친하게 지냈다. 내가 제주에서 왔다고 살갑게 대해준 것이 기억난다"며 "제주는 명예회복이 점차 이뤄지고 있지만, 여순항쟁은 아직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하루라도 빨리 모두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이 이날 추념식에 참가, 박성태 여순항쟁 보성유족회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은 "제주4·3과 여순항쟁은 역사적 공동체이며,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며 "특히 제주도민 학살 명령을 거부한 14연대의 봉기는 우리 제주도민이 꼭 알아야하는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부터는 여순항쟁 유족회와도 교류를 시작, 본격적인 연대를 벌이기로 했다"며 "다만 여순항쟁 유족회가 지역별로 나뉘는 측면이 있어 구체적인 교류 방안은 추후 결정될 것이다. 우선 오늘은 여수유족회를 만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여수시와 여순사건 지역민 희생자 지원사업 시민추진위원회는 19일 오전 11시 여수시 이순신광장에서 '제71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을 개최했다.

추모사에 나선 주승용 국회부의장은 "제주4·3이 없었다면 여순은 발생하지 않았을 아픈 역사"라며 "제주는 20년 전에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국가기념일 지정, 대통령 사과까지 이끌어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 부의장은 "여순은 유족간 갈등,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갈등 등으로 특별법 조차 통과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오늘 참석 해주신 제주4·3 유족 여러분들이 여순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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