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 네 개의 코너를 돌아 다시

[이나연의 문화광장] 네 개의 코너를 돌아 다시
  • 입력 : 2019. 10.15(화)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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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을 한다. 아니, 사무실까지 셈하면 네 집이다. 제주에만 있던 집과 사무실을 서울에 하나씩 더 구했다. 서울집에는 남편이 있고 제주집엔 하우스 메이트가 있다. 서울사무실은 출판사를 위해, 제주 공간은 잡지발행과 전시를 위해 돌아간다. 냉장고가 네 개, 책상도 네 개, 커피 장비도 꼭 네 개씩이다. 찾는 책이 여기 없다면 저기에 있는 모양이고, 그 옷은 입으려 하면 없고, 저 신발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이 인생은 사 등분으로 나뉘었다. 네 개의 삶을 한꺼번에 살아낸다 셈 치고 어수선한 신변을 종종거리며 정리한다. 포 코너스, 즉 네 개의 코너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야구의 기원인 게임을 생각한다. 네 군데의 베이스가 있고, 베이스에서 공을 친 뒤에 네 군데의 베이스를 다 돌면 득점을 하는 게임이다. 네 곳의 공간을 다니며 짐을 부려놓고,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찾고 있는 모습은 여럿이 하는 포코너스 게임을 혼자서 하는 느낌이다. 베이스를 찍고, 공을 치고, 또 베이스를 찍고, 공을 치는 일이 반복된다.

서울 베이스에서는 분리수거물과 쓰레기를 화·목·일에 집 앞에 해가 질 녘에 해야 한다. 제주 베이스에서는 매일매일 분리수거하는 품목이 다르고, 반드시 집 근처 클린하우스에 배출해야 한다. 요일을 착각하면 꼼짝없이 쓰레기를 되가지고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같은 한국에서도 지역별 정책에 따라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에 새삼 놀라게 된다. 베이스를 찍고 공을 치는 반복행동에 조그만 변칙들이 끼어든다. 온라인으로 필요한 물건을 제주집 주소로 배송해두고 후회하는 일도 생긴다. 도서 산간 추가비용이 발생하는데, 거기다가 크기가 좀 크기라도 하면 착불로 추가비용을 더 받는다. 서울에선 낮에 주문한 물건이 밤에 도착해 깜짝 놀라기도 한다. 물건이 너무 빨리 도착해도 놀란다는 걸 경험한다. 집이 역세권인 서울에선 지하철과 버스가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는 방법이다. 주택가에 집이 있는 제주에선 가까운 거리는 그냥 걷거나 먼 거리는 택시를 타는 것이 편하다. 운항편이 있다면 해외를 나갈 때는 제주공항이 유리하다. 시내에 공항이 있다는 장점은 이동시간과 여행의 피로도를 꽤 절감시켜준다. 같은 맥락으로 국내 출장을 가기도 용이하다. 육지 여타지역에서 어떤 장소로 이동할 때 KTX로 출장비가 청구되지만, 섬인 제주지역은 당연히 비행기값이 지원된다. 한 시간 남짓이면 한국의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제주출발 출장이 당연히 시간면에서 경제적이다. 다만 날씨가 변수다. 유난히 태풍이 잦았던 2019년 가을은 출도착운행정보를 수차례 확인하는 초조한 습관을 선물해줬다. 태풍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폭설의 시즌이 온다.

가끔 서울 하늘 아래서 왜 한라산이 안 보일까 궁금해하다 머리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기도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또한 곧 적응될 것임을 안다. 늘 길바닥에 서 있는 것 같다고 여겨지지만, 사실 내겐 거점이 있다. 많이 있다. 오늘도 베이스를 찍고 공을 치고 베이스를 찍고 공을 친다. <이나연 독립큐레이터·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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