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순력도 속 해녀복 1917년까지 착용”

“탐라순력도 속 해녀복 1917년까지 착용”
민속학자 고광민씨 논문
'병담범주' 도구·옷 분석
  • 입력 : 2019. 09.22(일)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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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원안)가 처음 등장하는 그림인 '탐라순력도'의 '병담범주'.

빗창을 들고 우미망사리
1917년 발간 전남사진지
원피스 해녀복 처음 등장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 나오는 해녀복이 1917년 무렵까지 이어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제주 민속학자 고광민(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위원)씨는 최근 국립무형유산원의 학술지 '무형유산' 6호에 실린 '탐라순력도 속의 해녀 연구'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탐라순력도는 이형상(1653∼1733) 제주목사가 1702년(숙종 28) 11월에 탐라(제주도)를 순력한 내용을 담은 화첩이다. 이형상이 순력하는 동안에 화공(畵工) 김남길이 그린 41점의 그림으로 구성됐다.

그 가운데 '병담범주(屛潭泛舟)'에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이 보인다. 용연에서 뱃놀이를 하는 장면을 묘사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제주 해녀가 나오는 최초의 그림이다.

고광민 연구위원은 '병담범주'의 해녀들은 이원조의 '탐라록'에 미루어 볼 때 제주목사와 그 일행들이 부정기적으로 취병담에서 뱃놀이를 할 때 점심상에 올릴 전복 등을 따고 있었을 것으로 봤다.

따라서 이들 해녀는 전복을 따는 '빗잠녀'들이고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전복을 따는 도구인 '빗창'이라고 했다.

그림 속 해녀의 '망사리'는 그물코 직경이 가장 짧은 '우미망사리'라고 덧붙였다. 제주 해녀들은 '우미망사리'를 '테왁'에 달아매 전복, 소라 등을 캤다.

당시 해녀들은 가슴이 드러나는 아랫도리 해녀복을 입고 있었다. 고 연구위원은 이같은 해녀복을 1917년 무렵까지 입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1917년에 출간된 '전남사진지(全南寫眞誌)'에 처음으로 가슴을 가리는 일명 '원피스 해녀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고 연구위원은 "아랫도리 해녀복이 일상의 속옷 겸용이라면, 원피스 해녀복은 일상의 속옷이 아닌 해녀들이 잠수할 때만 입는 본격적인 해녀복"으로 구분했다.

원피스 해녀복은 훗날 고무 해녀복으로 바뀐다. 그 시기는 1971년쯤이다. 이와관련 고 연구위원은 1971년 3월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에서 벌어진 고무 해녀복 착용에 대한 형평성 논쟁이 담긴 회의록 일부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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