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그늘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그늘
  • 입력 : 2019. 07.17(수) 00:00
  • 김도영 수습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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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햇살이 강렬하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올해도 예사롭지 않은 폭염이 몰려올 것이라 한다. 벌써 사람들은 햇살을 피해서 자꾸 그늘을 찾는다.

날씨가 더워지고 햇빛이 강렬하면 시원한 그늘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늘 속에 있을 때는 빛의 소중함을, 빛 속에 있을 때는 그늘의 소중함을 쉽게 잊어버린다. 우리는 항상 아쉽고 필요할 때만 그늘을 찾는다.

그러나 빛과 낮이 소중하듯이 그늘과 밤도 소중하다. 낮의 시간만큼 밤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밤은 휴식과 평화와 생산을 가능케 하는 시간이다. 밤은 소란하고 번잡스러운 낮의 시간을 피해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은신처이다. 인류의 역사도 빛과 어둠이 함께 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마당에 장끼들이 뛰어다니고 멀리서 뻐꾸기들이 해설피 울어대는 낮의 시간도 좋지만,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동식물이 잠자리로 돌아간 적막과 고요의 시간이 나는 한없이 좋다. 이때에는 세상에서 오직 혼자만의 시간이 된다. 간혹 멀리서 개짓는 소리만 들리고, 일찍 찾아온 귀뚜라미 소리가 지지대며 오랜 벗 인양 외로움을 달래준다.

잃어버린 시간, 함께하지 못하고 먼저 떠난 사람, 멀리 하늘나라에 계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새벽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비록 세상은 어둡지만, 소음도 증오도 슬픔도 없는 시간이다. 오직 고요와 평화와 안식 뿐이다.

어둠 속에서도 모든 생명은 숨 쉬며 새로운 아침을 기다리고 낮의 활동과 희망을 생각한다. 낮은 대화하며 활동하는 시간이지만, 밤은 성찰하며 번뇌하는 시간이다. 번뇌한다는 것은 자기성찰로서 세상의 어려움을 녹여내고 다스리기 위해 고민하는 것을 말한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빛을 기다리며 세상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사람들은 어둠과 적막을 거부하며 싫어하지만, 밤은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이다. 이것은 인생의 이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오직 빛만 바라보며 고통 없는 삶을 원하지만, 고난 없고 그늘 없는 삶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수시로 다가오는 고난은 견딜 수 없는 아픔이고, 어둠은 아득하고 힘든 시간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이 힘든 시간이 지나야 내일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시간이 올 수 있다. 무엇이든 양지에서만 너무 쉽게 구하려 들지도 말고, 고난 없는 삶을 바라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서 울면서 태어나지 않았던가. 울지 않고 살 수 없듯이 어둠 없는 삶이란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양지에서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늘에서 힘들게 묵묵히 일하는 사람 덕분에 사회는 이루어진다. 그늘에서 우리를 존재케 해주는 사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밝음이 되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이 세상은 유지되고 있다.

양지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도 그늘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누군가를 보살펴주고, 앞만 보며 달려가는 사람도 간혹 뒤를 돌아본다면 이 세상은 더욱 밝아질 것이 분명하다. 개인에게서든 사회에서든 빛과 그늘이 함께할 때야 이 세상은 더 아름답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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