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화계 이 사람] (28) 김유정 제주문화연구소장

[제주문화계 이 사람] (28) 김유정 제주문화연구소장
"어제 본 돌담 오늘은 없지만 그래도 현장으로"
  • 입력 : 2019. 06.25(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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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인 김유정 제주문화연구소장은 '제주 돌담'을 발간하는 등 제주 민중문화의 산물을 캐내고 가치를 담은 저작 활동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다. 진선희기자

지역에서 오랜 미술평론
농민·노동자의 미학 탐구

무신도와 동자석에서 시작
민중문화의 산물 발굴 작업
최근 제주 문화 디테일 찾기


"태풍이 불어 이 빠지듯이 무너진 돌담을 아버지의 아들은 세대를 이어 쌓고 쌓았다. 약속처럼 아버지는 묵묵히 검은 빌레 용암을 깨었고, 아들은 그 각돌을 날라다 돌담을 쌓았다. 어머니는 늘 하던 대로 밭의 김을 매다가 골라도 골라도 또 나오는 주먹만한 돌들을 골채로 날랐다. 그것들은 밭담이 되었고, 머들(돌무더기)이 되었고, 잣벡(잔돌로 쌓은 돌벽)이 되었다."

그가 글을 쓰고 사진을 더한 '제주 돌담'에는 노동하는 제주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세계유산' 돌담이 가능했던 건 비록 역사에 이름을 새기진 못했지만 바지런히 일상을 살았던 그들 덕분이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그는 1988년 2월 결성된 그림패 보롬코지 시절부터 이 땅의 농민과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미학을 탐구했다. "제주도의 한국 미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고 회화로서 무신도, 조각으로서 동자석을 찾아나서며 그 답에 다가섰다. 일찍이 미술평론가로 지역 사회에서 존재를 알렸고 지금은 제주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평론, 강의, 저작 활동을 벌이는 김유정씨다.

대원사 '빛깔있는 책들'로 나왔던 '제주 돌담'이 얼마 전 2쇄를 찍은 일을 계기로 만난 김유정 소장은 현장을 누비는 중이었다. 외부 일정이 없는 날에는 '산 속'으로 향해 '오늘'을 기록하는 일을 이어간다는 그는 산길에도 걷기 편한 신발을 들어올려 보이며 "언제든 야외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그간 그가 내놓은 책은 '제주의 무신도', '아름다운 제주석상 동자석', '제주의 무덤', '제주미술통사', '제주의 돌문화', '제주산담' 등 10권에 가깝다. 모슬포 태생으로 산에서 바다까지 섬의 풍토를 몸으로 체험해온 그에게 '제주'는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존재들을 품은 섬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속성상 토지·개발문제가 심화되면 낡고 오래된 것들은 발붙이지 못할 것이고 관광지 제주에서 그 현상이 더 빨리 나타날 거라 여겼다.

무신도와 동자석에서 시작된 여정은 그 개념을 확장하며 해안가 원담, 중산간 잣담, 산담으로 연결됐다. '민중문화의 산물'을 캐내 가치를 보듬어온 그이지만 현장에 발디디면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하도 별방진성 인근처럼 어제 사진 속에 살아있던 돌담이 오늘 가면 허물어져 없다. 그가 '영혼의 집'으로 명명한 산담은 600년 역사를 지녔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혐오시설로 분류되어 있고 높아진 땅값에 우선 철거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제주 미술 찾기'를 위한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이즈음 그는 무덤 속에 핀 버드나무를 들여다보는 일에 빠져있다. 이장하며 심는 버드나무는 부정을 막는 '방쉬'(방법)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에게 버드나무는 "제주 문화의 디테일한 면을 찾아내는 작업"의 하나다. 오래된 제주 문화들이 곳곳에서 가쁜 숨을 쉬고 있는 때에 그들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여기 있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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