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미의 하루를 시작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기억의 방식

[김윤미의 하루를 시작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기억의 방식
  • 입력 : 2018. 04.24(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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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살고 싶어 무작정 배에 몸을 실은지 벌써 십년이 되었다. 십년 전 제주의 이곳저곳을 떠돌다 4·3 평화공원을 찾았었다. 그때까지 4·3은 모르는 역사였다. 대학시절을 보낸 전라남도 광주에 기거하기 전 5·18 역시 어렴풋이 전해 들었으나 모르는 역사였다. 역사를 알고 매해 5월이면 몇몇 선배들과 소주를 들고 망월동을 찾았었다. 그것은 직접 겪지 않았기에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역사적 비극 앞에 그들의 피로 물들었던 이 땅에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잊지 않겠다는 작은 다짐이었다.

5년 전 영화 '지슬'을 보기위해 극장으로 향했었다. 보고 싶은 영화이기에 앞서 꼭 봐야하는 영화였다. 극장으로 향하던 확고한 발걸음은 아마도 마음의 부채였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땅 곳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구나. 너무나 많은 아픔의 주춧돌 위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세워졌구나.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까지도.

영화 '지슬'은 70년 전 겨울, 정부군의 토벌작전에 살아남기 위한 도민들의 피난길 이야기다. 영화는 제사의 각 순서를 소제목으로 나누었다. 영혼을 불러 앉히기 위해 위패를 모시는 '신위', 영혼을 모시는 곳 '신묘',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 지방지를 태우는 '소지'. 이것은 역사적 비극뿐만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주는 위로와 같았다. 영화 '지슬'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성의 있게 추모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이야기 하는 듯 했다.

지천을 아름답게 물들인 꽃향기가 무색하게 향냄새가 더 멀리 퍼지는 아픈 달. 4월은 4·3, 4·19, 그리고 4·16 세월호까지, 그래서 '잔인한 사월'이라는 시가 기어코 떠올려지는 달이다.

올해는 4·3 70주년과 드디어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 4주기를 맞아 제주 전역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4·3사건의 영혼을 위로하던 오멸감독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과 같은 영화 '눈꺼풀'을 만들어 일 년 만에 재개봉을 하였고 철저한 분석과 과학적 근거로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는 오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전시와 공연들, 작품집들까지. 예술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죽은 자를 위로하고 산자는 잊지 않아야함을 외친다. 개개인은 동백꽃배지와 노란리본으로 우리도 잊지 않고 있다고 가슴으로 대답한다.

세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허나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끝끝내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면 한겨울의 촛불기적처럼 조금씩 달라지리라 믿는다. 혹자는 지금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지난 아픈 역사를 왜 굳이 떠올려야하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가 없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도 지난 역사가 차곡히 쌓여 만들어진 곳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은 바람에도 연약한 작은 촛불처럼 미흡할지 모르나 그 기억들이 조각보처럼 모여 함께 공유하고 다양한 기억의 방식으로 표현된다면 앞으로의 역사가 될 것이다. 상처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약을 바르고 바람이 통하게 드러내야 제대로 아문다. 역사도 그럴 것이다. 아플수록 곱씹고 또 곱씹어야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찬란한 봄날, 올해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동백꽃과 노란리본이 확고하게 피어있기를 기원해본다. <김윤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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