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제주학이 나아갈 길

[한라칼럼]제주학이 나아갈 길
  • 입력 : 2017. 09.12(화) 00:00
  • 고찬미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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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국 연구자가 제주 무속 신앙과 문화에 관한 연구 논문을 썼다. 물론 영문 원고이다. 이 논문 투고를 위해 저자는 어떤 학술지에 문을 두드릴까? 지리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인문·사회과학 분야 논문들은 흔히 그 지역 이름이 붙은 지역학 저널을 투고지로 삼게 된다. 따라서 제주학 관련 영문학술지가 이 논문이 가야 할 곳 일 순위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논문은 필자의 손으로 들어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영문학술지 편집자인 내가 제주학 관련 논문 투고 메일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 논문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니다. 한국과 한국문화와 관련된 인문·사회과학, 더 나아가 통섭적 연구를 하는 국내외 학자들의 교류를 도모해 온 대표 학술지에 제주 문화와 더불어 한국에 지대한 관심을 표한 해외 연구 논문이 들어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고 반길만한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이 저자의 연구를 잘 보완할 수 있도록 전문적이고 구체적 평가를 해 주는데 특화된 제주학 영문학술지가 존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내 고향 제주에 제주학연구센터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더 복잡한 심경을 느끼게 된 까닭인지도 모른다. 사실, 제주학의 중심인 이 기관에서 아직 영문 정기간행물이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던 중, 제주에 관심을 가진 해외 연구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소통 채널이 마련되지 않아 국내외 학술 교류 기회를 하나하나 놓치는 것이 안타까웠다.

제주학연구센터는 부설 연구기관으로서 창립된 지 그 역사가 짧은데 비해, 소속 연구진의 열정과 노력으로 그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 왔다. '제주'라는 접점 하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여 학제 간 연구까지 더한 수많은 연구과제들을 극소수의 연구인력으로 소화해야 하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총서 발간과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그리고 국제학술대회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 지원에 비해서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성과를 이룬 연구진 개개인의 노고에 감탄을 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위상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관심 하에 제주학연구센터나 관련 기관들이 어렵게 존립해 온 것 같다. 제주학은 여타 지역학과의 비교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본토뿐 아니라 다른 지역과 해외 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고유하고 독특한 섬문화와 풍습을 간직한 곳으로서, 오래된 화산섬 지형으로서, 자연 생태학의 보고로서, 그리고 지정학상 이유로도 여러 가지 차원에서 제주학은 국제적 학문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중요한 제주학을 성장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도정이 앞장서야 할 때다. 어려운 환경에도 제주학이 발아할 수 있도록 힘써 온 제주내외 연구자들에게 앞으로 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연구자들의 네트워킹과 왕성한 교류가 가능하도록 연구 인프라 구축에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제주를 제대로 알리는 이 학문의 발전이 국제 교류의 거점을 꿈꿔 온 제주의 성장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게 틀림없지 않은가. 제주학의 영어명은 Jeju Studies로 복수형을 사용하는데, 이는 그 외연의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 그 범위와 성격을 제한하지 않은 것이다. 열려 있는 학문으로서 지역적 한계를 넘어 학술적 교류, 그 물꼬가 시원히 트이도록 제주도가 먼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고찬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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