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포장만 그럴듯한 개방형직위 안되길

[백록담]포장만 그럴듯한 개방형직위 안되길
  • 입력 : 2017. 08.21(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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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몇몇의 반응은 쌀쌀했다. 외부에서 기관장을 채용한다고 바뀔 게 있느냐는 거였다. 같은 서기관급인 제주도문화정책과장에 비해 권한도 적은데 소리만 요란하다는 말도 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제주도가 이달 22일까지 개방형직위로 전국 공모하는 2년 임기의 제주도문화예술진흥원장과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장 이야기다.

도민속자연사박물관은 제주에서 가장 먼저 생긴 공립박물관으로 1984년 5월 개관했다. 도문화진흥원은 1988년 2월 설치됐고 그해 8월 제주 첫 문예회관 시대를 연다.

제주시 도심의 신산공원을 가운데 두고 이웃한 두 기관은 30년 안팎의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종종 조직개편의 '실험 대상'에 올랐다. 그동안 이들의 위상도 축소됐다.

도민속자연사박물관은 1988년 도문화진흥원으로 흡수돼 민속부로 개편된 일이 있다. 이듬해 7월 제자리로 돌려놓았지만 2008년 또다시 제주도문화진흥본부로 통폐합된다. 그러다 3년 뒤인 2011년에야 도민속자연사박물관으로 분리 독립했다.

이 과정에서 도문화진흥원장도 3급과 4급을 오가는 고무줄 직급이 됐다. 3급 본부장직으로 격상했을 땐 조직의 덩치는 커졌지만 문예회관 운영 방식엔 질적 변화가 거의 없었다.

개방형직위 임용 소식에 직원들이 떨떠름해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다. 도민속자연사박물관은 2011년 이미 한 차례 개방형직위로 관장을 선발한 일이 있지만 평가가 엇갈린다. 안팎에서 파장을 불러온 민속-자연사 분리 방안과 그와 연계한 민속 자료의 돌문화공원 이관이 이 시기에 추진된 탓이다. 도문화진흥원에선 해마다 대극장·소극장·전시실 대관 수요를 따라가기도 벅찬데 무슨 기획사업을 벌이려고 원장을 뽑느냐는 냉소적 목소리가 들린다.

이번에 제주도는 개방형직위 공고를 내면서 도문화진흥원장의 직무를 몇 가지 제시했다. 기존 도문화진흥원의 역할인 문예회관 임대와 관리, 도립무용단 운영, 공연예술 무대 요원 양성, 문화예술 교류 등이다. 도문화진흥원이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가동되는 조직이지만 공연장·전시실 운영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터라 차기 원장이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도민속자연사박물관장은 민속자연사 자료 수집·전시·보존과 조사 연구, 특별전 기획과 사회교육 프로그램 운영, 관람객 지원과 홍보, 시설물 안전 관리 등을 맡는다. 당장 민속·자연사 분야 학예 인력이 고루 배치되지 않고 특별전이 특화되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하는 만큼 신임 관장이 얼마나 추진력을 발휘할 지 지켜봐야 한다. 민속-자연사 분리를 둘러싼 논란의 불씨도 안고 있어 이를 어떻게 잠재울 지도 관심거리다.

두 사업소는 낼모레 퇴임하는 공무원들의 '마지막 거처'가 되곤 했다. 무탈하게 공직을 마감해야 하는 이들에겐 '지금까지 그래왔듯'이란 말이 더 친숙했을지 모른다. 지방서기관(도문화진흥원)이나 지방서기관·학예연구관·농업연구관·환경연구관(도민속자연사박물관)을 앉힐 수 있는 곳에 제주도가 개방형직위 카드를 꺼낸 건 그같은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일 수 있다. 새로운 얼굴을 내세워 제주 대표 박물관, 문예회관으로 키우겠다는 의지의 표시 말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에게 승진 기회를 막았다는 원망을 듣지 않으려면 응모자들의 남다른 비전이 필요하다. 내년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자리 보전을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겐 나서지 말아주시라 당부하고 싶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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