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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간판 보는 것도 즐거워" 한글 배우는 늦깎이 학생들
[한글날 제정 100돌] 동려평생학교 어르신 한글 교육
"배우는 게 즐거워… 돌아서면 잊어도 또 하면 되니까"
양유리 기자 glassy38@ihalla.com
입력 : 2026. 10.07. 16:50:06

지난 6일 오후 제주시 이도1동 동려평생학교 한글희망반에서 어르신이 한글 교재에 나온 문장을 공책에 따라 적고 있다. 양유리기자

[한라일보] "한글 배우는 게 너무 재밌어. 이제 내 이름도 쓸 줄 알고, 은행도 혼자 갈 수 있게 됐어"

한글날을 사흘 앞둔 지난 6일 오후 제주시 이도1동의 동려평생학교. 이곳에서 4년째 한글을 익히고 있는 채정심(79) 씨는 일주일에 두 번 학교 오는 날이 항상 기다려진다고 했다.

전남 해남 출신인 채 씨는 제주에서 50여 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한글을 몰랐던 채 씨는 계산서나 영수증을 읽지 못해 난처한 상황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나도 글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한 구석에 있었다.

지난 6일 제주시 이도1동 동려평생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는 채정심 씨가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양유리기자

채 씨는 한글을 배우고자 일반 초등학교 입학까지 고려할 만큼 공부에 열정이 컸다. 아들의 권유로 어르신 한글학교에 입학하게 됐고, 현재는 '한글으뜸반'의 반장도 맡고 있다.

채 씨는 수업시간에 가장 먼저 대답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처음에 와서 받아쓰기를 하나도 못 해서 빵점을 맞아서 얼마나 창피했는데. 그래서 오기를 갖고 노력했어"라며 "집 가서 복습도 하고, 배울 거를 미리 공부해 와. 수업시간에 한 것만으로는 실력이 안 늘어"라고 강조했다.

한글을 배우고 나서는 꿈에 그리던 독서도 시작했다. 최근 읽고 있는 책은 고전소설 '박씨전'이다. 채 씨는 "어려워도 10번씩 읽으니까 이해가 된다"며 "은행도 혼자 가고, 비행기 탈 때도 글자를 읽을 줄 아니까 너무 좋아. 이것만 해도 성공이지"라고 하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같은 시각 옆 교실인 '한글희망반'에서는 어르신 10여 명이 'ㄹ(리을)' 받침을 배우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칠판에 적힌 "잔치를 열어요. 축하 선물을 받아요. 마음이 묻어나는 반가운 편지를 받아요"라는 문장을 공책 위에 꾹꾹 눌러쓰고 있었다. 표기와 발음이 달라 어려운 글자들은 반복해서 따라 읽으며 질문도 이어졌다.

지난 6일 제주시 이도1동 동려평생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는 이화옥 씨가 자신의 한글 숙제 공책을 보여주고 있다. 양유리기자

이곳에서 만난 이화옥(75) 씨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화가 모두 글자가 되는 경험이 신기하다"고 했다.

이 씨는 농사일을 하며 글자를 모르는 데 큰 불편함이 없었으나, 수술 후 병원 갈 일이 잦아지면서 답답한 순간이 많았다. 그는 "원래는 'ㄱ(기역)'자도 몰랐으니까 병원에서 무슨 과로 가라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어"라며 "글자가 몰라서 불편한 거란 것도 몰랐어. 그냥 답답하기만 했지"라고 회상했다.

한글을 배우자 전에 모르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씨는 "글자를 알게 되니까 버스 타는 길에도 창밖을 보게 된다"며 "원래는 간판을 봐도 읽지 못하니까 관심이 없었는데, 이젠 알아지는 글자가 있나 보게 되고. 그런 게 참 재밌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새로운 기쁨을 준다. "학교에 안 나오면 '언니 왜 안 왔어'하고 찾아주고, 여기 오면 농담하고 웃고 떠들고. 그런 게 다 너무 좋아"라며 "돌아서면 잊어버려도 또 하면 되니까 이걸로 만족해"라고 말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지난 6일 오후 제주시 이도1동 동려평생학교 한글희망반에서 어르신이 한글 교재에 나온 문장을 공책에 따라 적고 있다. 양유리기자

지난 6일 제주시 이도1동 동려평생학교 한글희망반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이 진행되는 모습. 양유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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