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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일보] 비경과 비사들로 넘쳐나는 제주도에서 탐라제주의 역사문화 10선을 정한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고 도전이다. 그럼에도 글로 선보이는 것은 이 땅의 역사문화를 널리 공유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됐음이다. 필자가 선정한 탐라제주 역사문화 10선으로는 ▷삼성신화와 1만8000 신들의 이야기 ▷한라산과 오름들에 깃든 비경과 비사 ▷해상왕국 탐라와 출륙금지령 ▷제주 사현과 오현 그리고 탐라제주 향현 ▷김만일과 광해 그리고 김만덕과 정조 ▷3읍성 9진성과 읍성철폐령 ▷ 1168년부터 1948년까지의 민란·왜변·항쟁 ▷개척 논농사와 제주의 물 ▷일제의 '결7호작전'과 노천박물관 모슬포 ▷서당·향교·서원·학교 교육 등이다. 다음의 이야기들을 통해 필자가 고른 10선에 관한 대강의 맥락이라도 짚어보자. 물과 불과 바람이 빚어낸 화산섬 중심에 한라산이 있고, 산정호수 백록담을 중심으로 360여 오름들이 중산간은 물론 해안에도, 설치예술처럼 자리하면서 섬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단일지역에서 솟아난 오름의 수로는 제주도가 세계 최다라고 한다. '제주 삼다'인 돌·바람·여자에서 양성평등 시대를 맞은 지금은, 신(新)삼다로 돌·바람·오름을 칭하기도 한다. 성산일출봉이 오조포구와 터진목 사이로 바닷물이 오간 섬이었듯, 종달지미봉 역시 용항포(하도 철새도래지)와 두문포(종달포구) 사이로 바닷물이 오갔던 섬이었다. 터진목이 정의현 읍성인 '구수산 고성(舊首山 古城)'의 성담 등으로 일제에 의해 메워진 반면, 지미봉 남쪽을 휘감아 흐르던 '종달리 바다만'은 패총과 갯벌, 근현대의 염전과 간척 등으로 긴 세월을 거치며 서서히 메워져 오늘에 이른다. 종달리 패총에서는 약 2000년 전 탐라에서 생산된 토기를 비롯해 백제와 통일신라시대의 자기와 단검 등도 출토됐다. 이를 근거로 고고학자들은 종달리 포구를 천년 이상 국제무역항의 역할을 했던 곳으로 추정한다.(새롭게 쓴 탐라사, 2024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발간) 승자의 기록이라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현상에서 본질을 찾아내듯 우리는 진정한 역사관 내지 목민관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흠모할 대상을 찾아내 공유하는 문화를 가꾸는 일은 국가와 지역의 사명이자 역할일 것이다. 항해술과 조선술이 뛰어난 탐라는 일본과 중국 등과도 교류를 했고, 제주는 오랜 세월 외침과 수탈을 수없이 당하면서도 지난한 삶을 이어온 저항과 끈기의 섬이자, 자연재해를 극복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변방이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는 탐라제주가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한데 어울려온 데는 숨은 정신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과 포용성이고 창의성이다. 그리고 어울림과 수눌음이고 세계로 나아가려는 도전정신이 아닐까.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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