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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유연한 마을과 관계 인구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입력 : 2025. 12.08. 01:00:00
[한라일보] 얼마 전 제주시 건입동 마을조합 사무실에 젊은 부부가 찾아왔다. 둘 다 서울 태생으로 홍보 마케팅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 부부는 여행차 내려왔다가 제주시 원도심의 묘한 매력에 끌려 두 해 전부터 마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고 했다. 마침 김만덕 다함께돌봄센터에 자녀들을 맡긴 터라, 본업을 살려 마을에 무언가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면서 부부는 수줍게 웃었다.

우리 사회에 인구 감소, 지방 소멸이라는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다. 수도권 집중과 도시 불균형 성장이 야기한 대한민국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자칫 국가 성장판이 닫히지 않을까 좌불안석하면서 정부는 인구 소멸 지원법을 제정하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소멸 위기 지역 회생을 위해 야단법석이다. 이렇다 보니 발등에 불 떨어진 전국 지자체 간 과열 경쟁이 심화되면서 자칫 제로섬 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듯 보인다.

제주도는 제주살이 열풍이 꺾이고 인구 자연 감소에 탈제주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인구 문제가 연일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정주 인구를 늘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현 상황에서, 생활 인구 유치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제주도의 노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이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니고 연간 15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제주야말로 충분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생활 인구 유치가 정주 인구 확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의도와는 달리 성과는 미미해질 수밖에 없다. 인구 유출과 지역 활력 저하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일자리, 주거, 교육, 문화, 생활 여건 등 삶의 질 향상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 대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건입동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을 추진하면서 원도심 마을의 생존 방식에 대한 고민이 깊다. 마을복합센터 개관을 준비하는 요즘, 김만덕 마을의 다양한 역사·문화·공동체 자원을 바탕으로 하는 매력 있는 콘텐츠와 커뮤니티 비즈니스 모델, 협업 체계를 구축해 마을 경제 재생 허브로 거듭나고자 한다. 건입동 도시재생사업의 성패는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관계 인구'를 유치하고 이들이 마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상호 호혜적인 공생 관계 맺기에 달려있다.

바야흐로 제주 축소 시대, 마을은 더 이상 지리적 경계 내에만 존재하지 않는 유기체와 같다. 다양한 문화와 콘텐츠가 이동하면서 새로운 형태로 진화·발전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얼마나 거주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가느냐가 마을의 생존조건인 셈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포용적이고, 유연한 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마을공동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최근 우연히 접한 책 '소멸하지 않는 도시'에서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조건으로 "마을에 머물고 싶은 이유, 돌아오고 싶은 감정, 공동체 속의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조언은 마을의 생존 방식 자체를 재설계해야 함을 시사한다. 김만덕 마을은 바로 이 부부가 내민 손을 맞잡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명범 행정학박사·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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