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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화의 건강&생활] 암 환자의 웃음치료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입력 : 2025. 11.26. 01:00:00
[한라일보] 15년 전 암 환자들을 위한 웃음 치료 모임에 참석했다. 강사는 3기 유방암을 앓아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우울증이 시작됐다고 했다.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아파트 부엌으로 가는 좁은 통로의 바닥에 원을 그려 놓고 지나가다가 발이 원의 안쪽을 밟을 때마다 일부러 소리를 내며 웃기로 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내가 뭘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하다 보니 크게 웃게 됐고, 스트레스가 없어지면서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기고 생기가 돌아왔다고 했다.

강의 초반에 준비운동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큰 소리로 "하! 하! 하!"를 반복하라고 해 작게 소리를 냈지만 옆 사람들과 손도 잡고, 서로 등을 두드려 주는 등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드디어 큰소리로 진짜 웃게 됐다. 잠깐이지만 신이 나 아무런 근심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끝내겠다는 강사의 말에 이 순간이 계속됐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웃음은 살짝 짓는 미소부터, 큰소리로 깔깔대며 손뼉을 치는 박장대소(拍掌大笑)까지 다양하다. 너무 심하게 웃으면 허리가 끊어지게 아프고 배도 아파져서 요절복통(腰折腹痛)이라고 한다. 진짜로 웃을 때는 안면의 근육들이 세 부위에서 동시에 움직인다. 입 가장자리가 귀 쪽으로 늘어나면서 입꼬리가 위로 향하고, 뺨의 근육이 위로 올라가며, 눈가에 주름이 잡힌다. 19세기 프랑스 신경의학자 뒤센은 이렇게 행복한 웃음이 뒤센웃음이라고 붙였다. 한편 백화점 직원, 비행기 승무원, 미스코리아 후보가 의도적으로 입꼬리만 살짝 올린 웃음은 진짜가 아니다. 웃음은 유쾌한 이야기를 듣거나 그러한 이미지 또는 비디오를 보고, 심지어 생각만 해도 일어난다.

면역의 중추 역할을 하는 림프구의 한 종류인 '자연살해(NK)세포'는 암세포와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직접 파괴한다. 웃음이 NK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 웃음은 대상자들의 NK세포기능을 증진시키고, 뇌에서 모르핀과 유사한 엔도르핀의 생산을 자극해서 통증의 완화를 가져온다. 호쾌한 웃음은 코르티솔이나 에피네프린 같은 스트레스 물질들의 분비를 억제하고, 혈관의 확장과 혈류증가를 유도해 심장병의 예방과 웃는 동안 몸 속 근육들도 격렬하게 움직여 엄청난 에너지 소비 효과를 가져온다. 정서적으로 웃음은 불안과 두려움을 줄여주고, 기분을 전반적으로 개선시키며, 삶에 기쁨을 더해준다. 흥미롭게도 억지로 웃어도 뇌는 이를 진짜로 인식해서 진짜 웃음의 90%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2017년에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웃음의 효과를 평가한 일본의 한 연구 결과는 삶의 질과 증상은 물론 우울증과 불안 스트레스의 개선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암으로 진단을 받았거나 치료 중인 환자들은 웃음을 거의 잊고 지낸다. 그래서 평생 무료로 반복해서 할 수 있는 웃음은 암 환자에서 중요한 명약이다. 어릴 적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인기 TV프로그램을 보면서 뒤집어질 정도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프로그램이 언제 다시 시작될 수 있을까? <한치화 제주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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