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오피니언
[김봉희의 월요논단] 우리에게는 공원이 필요하다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5. 09.01. 02:00:00
[한라일보] 제주는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섬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넓은 공원은 의외로 드물다. 관광객에게 보여줄 자연은 풍부한데, 정작 주민들을 위한 생활형 공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아이들에게 공원은 단순한 놀이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네와 미끄럼틀만 있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이다. 반면 넓은 공원은 달리기, 자전거, 술래잡기 같은 활동이 가능하다. 여러 명이 어울려 노는 과정에서 사회성이 길러지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며 창의력도 자란다.

실제로 덴마크에서 94만 명을 추적한 연구에서는 어린 시절 녹지가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 정신질환 위험이 상대적으로 55% 낮았다. 또 스페인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넓은 녹지에 접근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작업 기억과 IQ에서 더 높은 성과를 보였다. 이런 결과는 공원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함께 키우는 '야외 교실'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는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르신들에게도 공원은 필수다. 호주에서는 'Seniors Exercise Park'라는 노인 전용 운동 시설이 낙상 예방과 이동성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도 근력과 균형이 유지되고, 녹지와 햇빛은 정서 안정에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공원은 외로움을 줄이고 사회적 유대를 만들어준다. 산책 중 나누는 짧은 인사, 벤치에서의 대화 한마디가 삶의 활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공원이 세대를 잇는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뛰놀고, 부모는 함께 걷고, 노인은 그늘에서 쉬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일상적인 장면이 바로 공동체의 힘이다. 유럽 93개 도시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도시 수관율을 30%까지 높이면 폭염 사망을 약 40% 줄일 수 있다는 결과도 있었다. 공원이 단순한 여가 공간을 넘어, 세대를 지켜내는 안전망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공원은 단순한 취미 공간이 아니라, 건강·환경·복지를 아우르는 기반 시설이다. 세대 간 단절을 줄이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있어 공원이 맡는 역할은 생각보다 크다. 결국 한 도시가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는 그곳의 공원 크기와 질이 말해주고 있다.

제주가 진짜 '삶의 질'을 이야기하려면 관광객을 위한 경관만큼 주민을 위한 공원에도 신경 써야 한다. 지자체 차원의 토지 확보와 예산 편성, 그리고 국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원을 단순한 녹지나 체육 시설로 보는 시각을 넘어, 세대가 어울리는 생활 복지 인프라로 바라봐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첫 학교, 어르신들에게는 마지막 복지관이 되는 곳. 제주가 일상의 숲과 공원의 섬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세대 모두가 행복한 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봉희 제주한라대학교 사회복지학 겸임교수>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