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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92)한림읍 월령리
거친 바닷바람이 사람을 부드럽게 만드는 마을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5. 07.11. 03:00:00
[한라일보] 한림읍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한 독특한 마을이다. 신석기 유적인 한들굴은 사람이 살았던 증거자료로서, 제주의 고참 마을이라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출토된 삼각 점렬무늬가 장식된 토기 아가리편과 사슴다리뼈로 만든 긴 주걱모양 뼈 연모로 볼 때 그 시기를 추론할 수 있다. 철기시대 유물로 적갈색 경질 두드림무늬 토기편과 애월읍 곽지패총에서 출토된 경질무문토기편 등 다양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 유물들이 출토된 곳이다. 탐라순력도 한라장촉 부분에 원룡포(元龍浦)라고 표기된 곳이 지금의 월령포구다. 월령리 지명은 원룡포와 발음의 유사성에서 연결고리를 찾기도 한다. 그것은 한자 표기라고 해두고, 이 마을 땅을 이르는 지명은 '가문질' '거문질'로 지칭돼왔다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온통 검은 빌레와 돌무더기로 덮여있는 곶자왈 지대에 들어와 돌들을 걷어내는 작업으로 밭과 집터를 마련했다.' 새까만 현무암을 먼저 떠오르게 하는 지역이기에 거문질(검이 길)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삶의 터전 대부분이 돌무더기를 걷어내며 이룩한 마을. 그 집념에 머리 숙인다. 제주의 그 어떤 마을보다 생존 공간 마련에 노동력이 가장 많이 들어갔다. 제주인의 개척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마을이다. 살아있는 박물관.

강한철 월령리 이장

손바닥 선인장이라고 하는 강렬한 이미지가 이끄는 조용한 마을. 자생 상태와 보존성을 인정받아 선인장군락지가 천연기념물 제429호로 지정 보호되는 곳이다. 농약과 비료를 싫어하는 특성을 가진 약용식물이요,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아 백년초·천년초라 불리고 있기에 소중한 농업소득원이기도 하다. 이 평화로운 마을 속으로 들어가 보면 엄청난 잠재력이 숨 쉬고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진가를 발휘하는 공동체정신이 으뜸이다. 2009년 '베스트마을 만들기'를 시작으로 2010년 '참 살기 좋은 마을' 등 로컬생태계를 기반으로 하는 강점을 가지고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바닷바람 자원이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오래전부터 인정받아왔다. 풍력발전의 선도적 입장을 지니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 난관과 우여곡절 끝에 꿈이 좌초되는 울분도 겪었다. 세월이 흘러 풍력발전에 대한 인식과 선호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해상풍력을 통한 마을 발전의 꿈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희망이다. 바람의 섬, 월령리 바닷바람이 가지는 그 강력한 에너지는 과학적 사실이기에 앞서 풍토성을 기반으로 하는 자원인 것이다. 풍력지구 지정을 통해 월령리 앞바다 양질의 바닷바람 자원이 도약의 순풍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강한철 이장에게 월령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선인장과 같은 생명력'이라고 했다. 어떤 역경에도 처해진 환경을 탓하지 않은 사람들의 의미라는 것이다. 조상들의 불굴의 의지로 개척된 터전에서 그 유전자를 생명력으로 승화시키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안타까운 현실도 드러나 있다. 천연기념물 선인장 군락지 해안 탐방로가 노후되고, 바닷가와 인접하고 있는 절묘한 상황을 제대로 연출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를 극복할 방법을 행정에서 찾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민들의 의식 수준과 탐방객들의 감동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범주의 예산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천연기념물을 담당하고 있는 영역에 국한해 떠밀기 할 문제가 아닌 이유는 손바닥 선인장이 가지는 특수성에 있다. '생명력'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공감작용을 단순한 감상과 탐방을 뛰어넘는 가치로 승화시킬 수 있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바닷가 손바닥선인장이라고 하는 특수한 테마를 새로운 관점에서 증폭시킬 필요가 있다.

마을 만들기 성과로 나타나게 된 보람된 멋스러움들이 포근한 느낌을 준다. 바닷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월령리는 온몸으로 노출된 듯 바람에 휘청거릴 정도다. 그 강한 바람이 운명처럼 생성시켜 준 것은 부드러움이라 입을 모은다. 파도에 부서지며 매끈한 몽돌이 되는 이치처럼 사람들 또한 그렇다는 것. <시각예술가>



무명천 할머니 삶터
<수채화 79㎝×35㎝>

돌아가신 지 20년이 흘렀다. 4·3 후유장애로 평생을 살다 가신 진아영 할머니께서 사시던 집을 그렸다. 저 집을 인척들이 제주특별자치도에 기증해 관리 보존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연이야 널리 알려져 있는 무명천 할머니의 삶은 4·3이 남긴 상처의 가장 큰 상징으로 다가왔다. 사연을 모르는 이방인의 눈에는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농어촌마을 집으로 보일 것이다. 저 집에서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살아갔던 모습을 떠올리는 월령리 주민들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정낭은 모두 걸려 있어서 주인이 멀리 출타 중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너무 멀고 먼 길을 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정낭을 보며 가슴이 아려왔다. 쌓인 돌담들을 할머니의 한 맺힌 사연이라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섬세하게 그리려 했다. 저 자연스러운 돌담들의 짜임 사이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후손들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심정이리라 생각하면서 그렸다. 무명천 할머니의 삶터였던 집 자체를 후손들에게 4·3의 실상을 전하는 역사자료로 남기고자 하는 깊은 뜻. 미력한 붓으로 그리면서 건물 색깔은 무명천 느낌이 나도록 채색했다. 실제 페인트 색과 아주 조금 차이가 난다. 색채가 지니는 메시지로 무명천 할머니의 인생을 표현하고자 한 것. 마을회관에서 북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이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월령리라고 하는 따뜻한 이웃 공간이 할머니에게는 온 세상이었을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이 마을사람들의 심성과 공동체의식을 입증하는 집이기도 하다.



바닷가 생명력의 상징
<수채화 79㎝×35㎝>

흙 한 줌 없을 것 같은 바닷가 암반 틈 사이에 뿌리를 내려서 꽃을 피우는 손바닥 선인장을 군락지 부근에서 발견해 그렸다. 단순한 풍경 이상의 의미가 그리는 내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처음부터 여기 섬 제주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바다로부터 표류해 온 식물. 멕시코가 원산지라고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이주민이다. 이동 경로를 추적해 봤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득한 옛날, 멕시코 바닷가에서 손바닥 선인장 열매, 혹은 몸체 하나가 태평양 바닷가에 떨어진다. 바다를 헤매 다니다가 페루 해류와 남적도 해류가 만나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항로를 잡고 항해했을 것이다. 타히티에서 잠시 쉬고, 키리바시까지 흘러온 후, 마셜 제도 틈바구니를 지나 괌에 잠시 들렸다가 쿠로시오 난류를 기다려 북쪽으로 기나긴 모험을 한 후에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해변, 여기 월령리 바닷가에 당도했다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더 이상 떠날 곳이 없다는 것은 뿌리 내려서 살아야 할 새로운 고향. 저기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가 만나서 언제나 새로운 약속을 이어가고 있다. 여름 뙤약볕이 바닷가 검은 현무암마저 눈부시게 빛나게 한다. 구름이 끼면 검게 변하는 현무암이 바닷가에서 식은 그 용암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해 손바닥 선인장을 품었다.

제주에 정착해 살아가기로 한 외부 유입 존재 중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를 보유하고 있는 월령리. 이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소박한 상징화다. 멕시코에서 여기까지 와서도 뿌리를 내리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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