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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일보] 제주 속담에 '둥그린 닥새긴 빙애기 뒈곡, 둥그린 사름은 쓸메 난다'는 말이 있다. '뒹굴린 달걀은 병아리가 되고, 뒹굴린 사람은 쓸모가 생긴다'라는 의미다. 새들은 두 번 태어난다. 어미 몸에서 떨어진 알은 다시 알에서 탈출해야 한다. 어미는 알을 낳은 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지극정성으로 알을 품는다. 동박새는 암수가 함께 알을 굴려주지만, 암탉은 혼자서 담당한다. 바닥에서 알을 품는 어미는 바람마저 들어오지 못하도록 온몸으로 알을 지킨다. 새들은 보통 하루에 한 개씩 알을 낳지만 부화 시점은 거의 비슷하다. 왜가리와 해오라기와 같은 일부 조류는 비동시성으로 형제 간의 경쟁을 벌이다가 희생되는 경우도 생긴다. 알을 10개 이상 품는 닭과 꿩은 알을 한꺼번에 부화시키기 위해 알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야 한다. 알의 온도가 따뜻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발육 상태가 부실하고 알에서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어미는 배의 맨살을 알에 닿게 하며, 동시에 부리나 발을 움직여 알을 뱅글뱅글 굴려준다. 세상에 나온 병아리가 가장 먼저 깨닫는 건 '무서움'이다. 어미의 품에 있다가 제 발로 걷고 뛰고 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잠시라도 멈추거나 한눈파는 사이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날지 못하는 병아리는 잰걸음으로 이리저리 어미를 따라다니거나 동료들의 대열에서 벗어나면 큰일이다. 커갈수록 주변 상황을 익히게 되고 공습경보에서 점차 경계 태세로 낮추게 된다. 걸음걸이는 느릿해 보여도 눈치는 상당히 빠르다. 발도, 눈도 잘 굴려야 건실한 닭으로 변신할 수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과잉보호에서 벗어나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굴러가는 세상물정을 알아야 한다. 제주어 중에 '둥굴어 뎅기다'는 약간 부정적인 어감으로 '이리저리 정처 없이 나돌아 다니다'라는 뜻이다. 해야 할 일이나 시킨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이 종종 있다. 달리 해석하면,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지나치게 오지랖이 넓지 않는다고 하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게 죄가 아니다. 빗물이 돌고 돌아 바다를 만나듯 한 번 돌았던 동네도 다시 돌아볼수록 제대로 굴러가는지 알 수 있다. 알도 때가 돼야 부화하듯이, 사람의 일도 어떤 과정에 잘 숙련돼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어느 한 곳만을 차지하거나 특정 분야에만 집중하면, 자칫 위험해지거나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두루두루 살펴야 한다. 돈도 굴려야 쓸 때가 더 많고, 잔머리도 잘 굴려야 지혜롭고, 바퀴도 제대로 굴러야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 AI와 잘못된 정보에 의지하지 말고, 올바른 판단이나 정의로운 실천을 위해서라도 더 넓게 더 멀리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구석구석 현장을 누벼야 실속을 챙길 수 있다. 그래야 모난 성격도 둥글둥글, 비뚤어진 민생도 뱅글뱅글 돌아갈 수 있다. <김완병 제주학연구센터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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