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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현성 이설 600주년/ 과거와 미래를 잇다] (5)문화재 보전·정주여건 개선 ‘딜레마’
“재산권 침해 심각… 성읍마을 문화재 규제 완화 고민해야”
백금탁 기자 haru@ihalla.com
입력 : 2023. 07.04. 00:00:00
문화재지정구역 조정·현상변경 절차 간소화 요구
매입 초가 보전 재원 낭비 지적… 활용방안 주문도


[한라일보]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은 1984년 6월 7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4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현시점에서 문화재보호법에 묶인 채 비좁고 불편한 초가에서의 삶을 개선하고 경제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시설 확충 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민속마을로서의 원형 보전 또한 관광을 주업으로 하는 마을주민들의 실생활과는 불가분의 관계로 개발과 보전이라는 양립구조의 악순환은 되풀이 되고 있다. 이에 주민들이 원하는 증·개축을 위한 현상변경 절차 간소화, 문화재지정구역 조정, 제주도가 매입한 고가(古家)의 보전 및 활용방안에 대한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주민이 원하는 정주여건 개선=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성읍마을 주민들의 삶은 큰 불편에 직면했다. 지난 39년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자신 소유의 집에 대한 시설 개선은 고사하고 지금도 실내에 화장실이 없이 지내거나 수돗물을 길어다 먹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성읍민속마을 인근의 천미천 공원 부지에는 자신의 집을 팔고 나와 컨테이너에서 수십년째 생활하는 주민들이 여럿 있다. 불편한 초가에서의 삶을 벗어나려했던 선택이었지만 경제적 문제와 고령으로 고향을 버릴 수도 없는 현실이다. 백금탁기자

일부 주민들은 주택을 행정에 매매해 놓고도 고향을 버리지 못하거나 돈이 부족해 마을 주변의 천미천 공원 부지에 컨테이너를 놓고 수십년째 살고 있다. 여기에 제주도가 매입한 집들도 활용이 제대로 되지 않아 5~7년가량 빈집으로 남겨지면서 또 다른 재원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주거지 내에 화장실과 샤워실, 보일러실 등 최소한의 편의공간 확보 등 증·개축 행위에 따른 현상변경 절차 간소화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현행법상으로는 경제활동을 위한 근린시설 마련을 위해서는 복잡한 행정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도전조차도 못한 채 불편함과 불평 속에 속절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

이에 주민들은 문화재지정구역 조정(기존 500m→200m 축소)을 비롯해 사유 재산 건축물에 대한 증·개축시 규제 개선 등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 심의 권한을 제주도로 이양하는 방안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제주도가 매입해 정비한 고가를 근린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임차인에게 영업권을 줘 직접 거주하면서 방치가 아닌 제대로 된 건물 관리를 통한 예산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행정이 추구하는 문화재 보전=국가민속문화재 제188호인 성읍민속마을(79만4213㎡ 규모)에는 문화재 26개(민속 6, 무형 1, 천연기념물 1, 도지정 18)가 산재해 있다. 또한 초가는 전체 235가구(934동)로 성내 77가구(260동)와 성밖(보존구역) 158가구(674동)가 있다. 초가외 변형 건축물도 71가구(371동)로 성내 9가구(37동)와 성밖 62가구(334동) 등이 존재한다.

행정이 매입한 초가를 원형 보존 원칙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예산 낭비라는 지적에 활용방안도 요원하다. 백금탁기자

성읍마을을 관리하는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의 입장도 녹록지 않다. 불법 건축물이 양산되고 있으나, 현상변경 허가 권한을 문화재청이 갖고 있어 주민편의를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성읍마을이 장기간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의 재산권 피해는 극심하다. 특히 가옥에 대한 현상변경허가 절차도 복잡해 허가를 받지 않고 가옥을 개조함으로써 불법건축물(870동)을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유산본부 측은 현상변경 허가 권한을 제주도로 이양 또는 대폭적인 규제 완화를 중앙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현상변경 절차 간소화를 위해 올해 3월부터 전문가 자문단을 운영하고 있다. 주민→서귀포시→제주도문화유산본부→문화재청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행정절차에 처음부터 자문단이 참여해 자문을 제공함으로써 허가 절차의 어려움을 해소한다는 취지다.

유산본부 관계자는 "2018년부터 현재까지 현상변경 허가 신청건수가 8건에 불과할 정도로 절차가 복잡해 이에 대한 주민 불만이 상당하다"며 "이에 따라 문화재청에서의 성읍마을에 대한 문화재 규제 완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금탁기자



"정의현 유배인 122명 확인… 심화연구 필요"


정의현성 이설 600주년 기념 전국학술대회 주제발표
홍기표 원장 "정치적 이유 대부분… 상당수 정착한듯"


홍기표 제주역사문화진흥원장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을 중심으로 했던 조선시대 정의현에는 문헌기록상 122명이 유배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정의현에 대한 유배지 연구가 거의 없었던 터라 이번 연구 결과는 학계의 관심을 끌었고, 향후 이에 대한 후속 연구 및 성읍마을을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홍기표 제주역사문화진흥원장은 최근 제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린 '정의현성 이설 600주년 기념 전국학술대회'에서 '조선시대 정의현 유배인 현황과 분석'에 대한 주제발표에 나서 역사학적 사료 연구를 통해 정의현에 유배된 인물을 종합적으로 조명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제주 유배인은 702명이며 이 가운데 정의현 유배인은 전기 5명(4.1%)과 후기 117명(95.9%)이다. 특히 조선 후기 중 영조 때가 75명(64.1%)으로 가장 많았고 숙종 때 11명, 정조 때 8명이 각각 유배된 것으로 사료를 통해 확인됐다.

특히 정의현 유배인 대부분은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됐다. 18세기 전반 영조 때 이인좌의 난(1728년)과 나주괘서사건(1755년)으로 유배된 이가 많은 게 특징이다. 유배 사유로는 역모와 반란 등에 연좌된 가족과 친인척이 46명으로 절반에 달한다. 정권 변동과 역모 등에 연루됐던 유배인도 20여 명이며, 간쟁과 왕명 비판 등의 이유로 유배된 이들도 10명에 이른다. 일반 범죄 및 (과거) 부정 등의 사회적 이유로 유배된 이는 20명 정도였다.

정의현의 최초 유배인은 태조 때 한천이다. 대표 유배인으로는 이곳에서 조선 전기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직후 죽림칠현을 표방했다 7년 넘게 유배생활을 한 홍유손과 8년간 유배생활을 한 조선 후기 인물 조정철 등이 있다. 최장수 유배인은 이인좌의 아들 이중명과 이인명, 정희량의 아들 정철흥으로 유배 기간은 27년이다. 이들은 유배 생활을 하다 정의현에서 처형됐다.

유배 기간 미상은 67명이었으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대로 정의현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기표 원장은 주제발표에서 "조선시대 유배지 정의현과 관련한 연구는 그동안 거의 없었다"며 "정의현 유배인을 살펴볼 수 있는 문헌 10여 종을 추려서 정밀 파악했고, 이를 토대로 향후 심화한 연구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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