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오피니언
[이영웅의 한라시론] 하천습지 소(沼)의 보전관리 필요하다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3. 02.16. 00:00:00
[한라일보] 날씨가 풀리고, 봄기운이 완연할 즈음이면 한라산 자락의 오름들과 초지는 온통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할 터이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자연 생태계의 변화무쌍한 모습은 가히 볼만하다. 특히, 물이 흐르지 않고 말라 있어서 생명체라곤 없어 보이는 제주의 건천에도 생태계는 다양한 연결고리를 갖고 존재한다.

제주의 하천은 지질 특성상 대부분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의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소(沼)라고 불리는 하천 내 암반 위에 산재한 크고 작은 물웅덩이는 여러 생명을 품은 오아시스와 같다. 엄연한 습지인 셈이다. 봄에 시작해서 여름 내내 양서 파충류의 산란장소를 제공하고, 이들의 서식처가 돼 준다.

하천 변을 따라 긴 띠처럼 녹지축을 이룬 수림지대에는 다양한 종의 새들이 서식한다. 그중에 긴꼬리딱새, 팔색조, 두견이 등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된 이들 여름 철새들은 소가 분포하는 하천의 수림대와 주변 산림지역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조류이다. 또한, 겨울철에는 하천의 소 주변에서 자라는 종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열매를 먹이로 하는 원앙 무리가 규모가 큰 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도내 하천의 소에서는 버들치, 미꾸리, 드렁허리 등의 민물고기도 서식한다. 조사자료에 따르면 제주도 하천에는 약 40여 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제주도 내 하천습지는 양서파충류와 조류는 물론이고 어류, 수서곤충, 포유류 등의 서식에 있어서 중요한 생태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제주의 하천습지는 주민들의 생활환경과도 밀접하다. 주민들은 하천의 소마다 이를 지칭하는 고유의 명칭을 붙여놓았다. 중산간 마을의 아이들은 바닷가를 대신해서 하천의 소에서 물놀이했던 추억이 있다. 또한, 일부 소 중에는 용천수로서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된 사례도 많다.

이처럼 제주의 하천은 습지로서 중요한 생태적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지만 제대로 된 평가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부터 잦은 하천정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하천 바닥을 평탄화하는 바람에 하천의 소들이 훼손되기 일쑤였다.

정책적으로도 제주도의 습지 보전관리 대상에 하천습지는 단 한 곳도 포함돼 있지 않다. 하천의 소를 중심으로 생태적 기능을 하는 하천습지를 습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질학적, 생태적 가치는 물론 역사·문화적 가치도 함께 지닌 제주 하천습지의 보전가치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 습지정책에서는 소외되고, 무분별한 정비 공사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따라서 제주도는 하천습지에 대한 보전관리 정책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 우선 도내 하천마다 소의 분포 현황과 습지 생태계로서 어떠한 특성을 갖는지 기초 조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분별한 훼손 행위를 막고, 하천의 습지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하겠다. 그동안 잊혀 왔던 제주 생태계의 숨은 가치, 하천습지 소(沼)의 보전을 위한 도민의 관심이 요구된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