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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의 건강&생활] 우울한 건 잘못이 아닙니다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11.09. 00:00:00
[한라일보] 우울이나 불안 장애 같은 정신 질환은 전체 인구의 두세 명 중 한 명이 가지고 있는 흔한 병임과 동시에 어떤 심각한 질환만큼 당사자를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환자가 실제로 병원을 찾거나 치료를 받지 않는다. 왜일까? 하나는 정신과 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 때문일 것이다. 우울한 기분을 자주 '의지가 없음' 또는 '나약함'으로 연결 짓는 모습을 자주 본다. 스스로 너무 힘든 나머지 정신과까지 찾아와 놓고서도 "내가 이렇게 의지가 약한 사람이 아닌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누구에게 미안해 하는지 모를, 사과 아닌 사과를 하는 환자들도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막연히 '약', 특히 '정신과 약'에 대해 갖고 있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마음이 너무 힘든데 정신과에 가면 의사가 약을 처방할 것 같아서 못 가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다. 둘 다 정신 질환을 질환으로 여기지 않는 데서 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의지가 없는 나, 나약한 나, 혹은 너무 예민한 나라서 힘든 거라고 본인을 탓하다 보면, 이 문제로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진단을 받고 약을 먹어 치료 한다는 생각을 하기 힘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나는 미국 하버드 의대의 부속 병원, 그 중에서도 뇌-마음의학센터라는 곳에서 진료를 보고 있다. 마음을 운영하는 신체 기관은 바로 뇌, 그러니까 마음에 생기는 질환도 결국은 뇌졸중, 뇌종양 등과 같은 뇌질환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전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통합의학센터이다. 이곳에 일하는 의사로서, 신경과학적 방법으로 정신과 질환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나는 정신과 질환이 신체적 질환, 고로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든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약을 쓰고 싶어도 다양한 이유로 쓸 수 없는 경우도 많고, 병의 치료라는 게 약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장을 이용해 뇌에 자극을 주는 류의 치료도 있고, 흔히 약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하곤 하는 상담 치료 또한 결국은 뇌에 긍정적인 기능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약을 먹는 것만큼 또는 그 이상 효과적일 때가 많다. 약을 못 먹는 사정이 있거나, 아니면 거부감으로 약 복용을 망설이는 환자가 있다면 가능한 치료 방법에 대해 충분한 설명만 해 드리고 수 개월 혹은 수 년을 상담만 진행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약을 먹느냐 안 먹느냐 보다는 우울감과 불안함을 '못난 내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내가 아프다고 인정하고 당당히 병원에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뇌졸중이나 뇌종양 같은 질환이 생겼을 때 당연히 병원에 가고 치료를 받는 것처럼, 저절로 멀쩡해지지 않는다고 의지가 없는 탓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환자들이 우울, 불안 같은 마음의 문제에도 좀 더 편안해지고 당당해지면 좋겠다. <이소영 미국 하버드의대 정신과 교수·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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