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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4] 2부 한라산-(10)백두산 이름은 어디서 왔나
‘달문’과 한라산 옛 이름 ‘두무’, 같은 T+M구조 보여 흥미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10.11. 00:00:00

북한쪽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고봉에 둘러싸여 신비감을 더해준다.

백두산이 무슨 뜻일까?

[한라일보] 백두산이란 말은 '머리가 흰 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게 그리 간단치가 않다. 백두산이란 지명은 알고 보면 머리가 하얗다는 뜻과는 거리가 멀다. 일반에 널리 퍼져 있어서 그게 당연하다는 것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설명이 구구절절 길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라산과 관련해 그걸 생략하고 넘어가기도 어렵다. 그러니 우선 이 부분은 잠시만 미루자. 대신 두무악과 관련한 말들을 우선 다루기로 하자.

백두산 하면 떠오르는 곳이 천지다. 둘레 약 13㎞, 면적 약 9.2㎢이고, 최심부 깊이 312m에 달하는 큰 호수다. 1931∼1932년에 천지를 답사·조사한 바 있는 독일의 지리학자 헤르만 라우텐자히는 수심이 442m 이상인 것으로 보고 천지를 세계 10대 호수 중 하나로 꼽았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호수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 일대에 흩어져 사는 모든 민족의 관심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이름도 많고 얽힌 이야기도 많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천지 외에도 용왕담(龍王潭), 대지(大池)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용왕담'이라는 명칭은 백두산을 여행한 영국의 제임스가 1888년, '장백산'이라는 여행기에 천지를 백두산 정상의 용왕담이라고 기록한 데서 나오는 이름이다. 이 명칭의 근거는 뚜렷하지 않지만 제임스가 누구에게선가 들은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천지'라는 명칭은 1908년 청의 관리인 유건봉이 사용한 바 있지만 조선에서는 이미 1751년 이의철이 '백두산기'에서, 성해응의 '백두산기', 1766년 서명응이 '유백두산기'에서 언급했다. 안재홍 역시 1931년 백두산 답사 후 출판한 '백두산등척기'에 이 명칭을 사용했다. 용왕담이라는 명칭도 중외일보 1928년 1월 1일 기사에 '백두산용왕담'이 나오므로 우리나라에서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천지의 우리말 이름

우리나라에선 천지에 대해 어떻게 불렀을까? 다음의 내용은 국내 11개 기관과 개인, 일본 4개 기관이 소장한 248점의 고지도 중 백두산이 그려진 160점을 대상으로 분석한 것이다.

백두산은 그려졌으나 천지의 이름이 없는 지도는 88건으로 전체의 55.0%였다. 천지를 대지라고 한 지도가 31건 전체의 19.38%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이와 비슷했으나 대택(大澤)이 30건 18.75%, 지(池)가 4건, 달문담(達門潭) 2건, 천상근(天上近) 2건, 주팔십리 1건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 고지도에 천지라고 된 건 없었다.

지도만을 놓고 본다면 대지나 대택이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 명칭 중 눈길을 끄는 것이 달문담이다. 다른 명칭은 어느 정도 못이라는 일반명과 가까우면서 우리말과도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이 달문담이라는 명칭은 우리말이라고 하기엔 아주 이질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대동여지전도'라는 지도에는 대지라고 표기해 놓고도 그 서문에는 이를 달문(門)이라 했다. 한자표기가 서로 다른 것도 의아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달문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이렇다 할 해석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 달문이 무슨 뜻일까? 왜 하필 한라산의 명칭 두무와 같은 형태의 T+M 구조를 하고 있을까? 혹시 두 명칭에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천지에서 발원하는 강은 송화강(松花江)이다. 송화강은 만주어로 '하늘의 강'이라는 뜻이다. 만주어 쑹가리 우라(Sunggari ula)를 중국식 한자음으로 쓴 것이다. 하늘의 못 천지에서 발원하니 당연히 하늘의 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지의 만주어 이름은?

1751년 이의철이 '백두산기'에는 "이 산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한데 유독 한 곳만 돌산이 솟아 있고, 그 꼭대기는 탁 트여서 일곱 개의 봉우리가 에워싸고 있으며, 가운데에 큰 못(大澤)이 있으니, 이것이 곧 이른바 하늘 못(天池)이다." 또한 "… 이름하여 하늘 위의 연못(天上淵)이다"라는 내용도 있다. 여기에서 '이른바 천지'라고 한 것은 여진족(만주족)이 그렇게 부른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서, 타문(Tamun) 또는 쑹가리 노올(Sunggari noor: 하늘 호수) 또는 압카이 노올(Abkai noor: 하늘 호수)과 같이 여진족(만주족)이 '하늘못'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진어, 포괄적으로 만주어라 할 수도 있는 이 일대의 언어에서 천지를 타문, 하늘을 쑹가리, 못을 노올이라 한다. 못을 노올이라 하는 점은 한라산과 관련해 앞으로 중요하게 다루게 될 것이다. 다만 같이 하늘로 번역할 수밖에 없지만 '압카이'라는 말은 주로 종교적 개념의 하늘을 칭할 때 쓴다.

달문이란 여진어 타문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우리 말이 아니니 어색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제시한 천지의 명칭은 달문(門), 달문담(達門潭), 대지(大池), 대택(大澤), 용왕담(龍王譚), 주팔십리(周八十里), 천상근(天上近), 태일택(太一澤) 등이다.

그런데 중국의 자료를 좀 더 들여다보면 이외에도 더 있다. 자료를 생략해 그 명칭들만 나열하면 달문(門), 달문(達文), 도문(圖們), 타문(他們), 도문박(圖文泊), 도문(圖汶), 도문(土汶)으로 등이 나온다. 왜 하필 한라산의 또 다른 이름 두무처럼 T+M의 구조를 갖는 것인가?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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