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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8)구좌읍 행원리
돌, 바람, 인정 많은 풍요로운 三多 마을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10.07. 00:00:00
[한라일보] 나지막한 연대봉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참으로 아늑하다는 느낌과 함께 정감이 넘친다. 집들이 모여있는 모습이며 밭들과 함께 사이로 난 길들이 옛 취락구조를 많이 간직하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 느낌과는 달리 여기는 바람의 섬 제주를 대표하는 바람코지다. 행원리 바람의 경제적 생산성을 과학적으로 파악하고 자리 잡은 국내 최초 풍력발전단지가 있다. 거대한 바람개비가 자연과 마을풍경을 독특한 이미지로 바꿔놓았다. 이와 관련한 기관과 연구관련 시설들 또한 마을에 들어와 있어서 반농반어촌으로 살아온 마을이 최첨단과학과 만나 새로운 면모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농공단지나 육상양식단지 등 또한 마을공동체와 어떠한 형태로든 유기적인 공존의 관계를 형성하며 제주의 마을이 미래지향적으로 나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하다. 기업하기 좋은 마을의 대표적 사례로 주목 받는 이유는 마을 주민들의 인정미 넘치는 개방성에서 찾는다.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는 넓은 마음자세가 변화를 수용하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존재감이 날로 커가는 마을.

세계자연유산지구 마을 중에 가장 동쪽에 위치하는 자연자원 마을이기도 하다. 해안구조가 너무 독특하다. 특히 용암이 흐르면서 내부에 있던 가스가 밖으로 분출하며 표면이 갈라져 만들어진 프렛셔릿지가 광범위하게 발달돼 있다. 이 섬에 용암이 흐르던 시기에 바다와 만나면서 생성시킨 오묘한 해안구조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공동체의 터전이다. 그러한 지질학적 특이성에 기인해 바닷물이 냇가처럼 육상으로 깊이 들어와 있는 지형적인 특색이 마을 풍경을 더욱 경이롭게 한다. 목선이 바다에 떠다니던 옛날에는 풍랑이 심하거나 태풍이 불 경우에 옆 마을의 배들도 이 마을로 피항 왔었다고 한다. 밀물이 되면 파도가 들어올 수 없는 뭍의 깊은 곳까지 작은 목선들이 빼곡하게 들어와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 긴 조간대가 용돌이소, 조랑개, 한개, 밧소, 안소로 이어지며 포구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지형적 강점은 자연스럽게 수산업과 관련한 마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용천수가 풍부한 마을이기도 하다. 지질학적 특성에 기반하여 드러나는 당연한 요인기기도 하거니와 제주 선인들이 부르던 이름들이 너무도 정감 있다. 말랭이물, 고망물, 꾸렁물, 대물통, 버랭이물, 둠뱅이물, 사농물, 지성물 등 용암이 흐르며 그 밑에 용천수 줄기도 함께 끌고 온 것은 아닌지 마을 해안가 암반들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어떠한지 알기 위해 김승만 이장에게 여쭈었다. 가장 큰 강점이자 장점을 특이하게도 "향학열!"이라고 대답했다. 반농반어로 삶을 이어가던 옛날의 마을 상황에서 비롯한 마을공동체의 공통된 집념은 자녀들에 대한 희망이었다고 한다.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할 방법은 교육에 있다는 확신에서 과도할 정도로 공부에 매진하도록 하는 풍토다. 그러한 전통은 '재단법인 행원장학회'가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정신적 토대가 되고 있다고 했다. 필자가 리사무실을 찾았을 때,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전 이장이셨던 홍순대 어르신의 부인 채만금 여사께서 1억원을 장학금으로 기탁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상투적인 찬사가 필요 없이 이것은 행원리의 문화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 함께 살아온 인정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로 그 따뜻한 흐름이 흘러가게 되는 것인지 알고 있는 행원리 사람들의 실천적 선행. 마음이 먼저 부유한 사람들이 이룩한 역사는 늘 후손들에게 영광이 돌아간다고 했다. 부담은 내일을 살아갈 후손들에게 있는 것.

마을 어르신들이 행원리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다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 옛날, 바닷가에 시체가 마을 경계가 애매한 곳에 떠밀려오면 인접한 마을에서는 그 시체를 치우는 일이 고역이라서 억지를 부리며 '너희들 바당이니 너희가 치워라'라고 하면 다투기 싫어서 궂은일을 해버리다 보니 차츰차츰 바닷가 경계가 길어지고 넓어져서 오늘날에는 바닷가 면적이 다른 마을에 비해 긴 마을이 됐다는 역사. 다투지 않은 이익을 후손들에게 물려준 결과가 됐다고 한다. 사람이 더 아름다운 마을이다. <시각예술가>





가을 햇살 빚어내는 모습들
<수채화 79cm×35cm>


눈금이 있다. 600년 마을의 역사가 흐르면서 터득한 눈금이다. 정확한 길이는 측정하기 어려우나 바닷물이 몇 백 미터를 뭍 깊숙한 곳, 안소라고 하는 곳까지 들어와 뱀장어가 살 수 있는 자연적 여건이 되는 마을, 햇살이 비치지 않는 돌담에 농도 차이는 바닷물이 차오를 수 있는 최고 지점이다. 바로 그 위에까지는 집을 짓고 살 수 있다는 경험치를 그리려 했다. 그 노하우는 행원리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역사의 눈금이기 때문이다. 섬 제주의 마을 중에 이렇게 바닷물 가까이 집을 지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이 지점까지 들어온 바닷물은 파도가 없는 그냥 호수요 냇물과 같은 존재다. 밀물과 썰물이라는 2박자 리듬만이 있을 뿐. 잔솔들이 들어찬 언덕은 오후 햇살을 받아서 눈부시게 빛나고, 돌담과 집들이 서로서로 광선과 그림자로 오래된 이웃의 정을 이야기 하는 듯하다. 파스텔톤 지붕들이 오랜 세월을 이야기하는 정겨운 가을날. 수채화로 담백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의 집과 밝은 표정을 연상하며 그렸다. 햇살을 받은 돌담과 그늘 속에 있는 돌담이 너무도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시간, 건물 벽은 색칠을 한 모습이기에 태양광선과 만나면 그 찬연한 차이가 명암으로 하여금 잇닿은 다른 물상들에게 존재감을 선물한다. 하늘과 바다의 면적은 지극히 최소화된 의도 속에 가옥과 가옥 사이 공간감이 더욱 크다. 화면이라는 사각구조 속에서 가구처럼 짜들어간 우리 이웃들의 모습은 정교한 공예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광해를 생각하며 그린 어등포
<수채화 79cm×35cm>


인조반정으로 폐위돼 강화도에서 십 여 년 귀양을 살다가 다시 이 곳 섬 제주로 유배돼 온 광해. 처음 당도한 곳이 여기다. 한 인간의 드라마틱한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필자의 입장에서 행원리에 가면 포구를 서성이는 버릇이 있다. '어디일까,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은?' 드디어 찾았다. 여기다. 지극히 개인적인 확신이다. 용암이 흘러가다가 용의 모습으로 굳은 듯한 저 모습. 용의 머리가 물속에 반은 잠겨 있다. 광해를 마중 나온 용이려니. 상상 또한 예술의 아주 작은 영역이거니와 그렇게 상상을 하여 그렇게 보이는 것이리라. 상상력이니 저 바위 위에 광해와 함께 온 일행들이 군상의 형태로 조각돼 용의 머리 위를 밟고 지나가는 모습이 있으면 그 모습을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스토리텔링 자원으로 이보다 알토란같은 소재가 있을까?

해는 방금 전에 지고 은은한 노을의 잔광이 포구에 내려앉았다. 고깃배 한 척이 광해처럼 외롭게 굵은 밧줄로 묶여서 선창에 기대어 있으니 애처롭기까지 하다. 용머리와 고깃배의 일대일 대비. 하나는 흑이요 또 하나는 백이다. 밝음과 어둠. 해가 진 바닷가에 조금 있으면 어스름 내리고, 밝음은 사라져 어둠이 되는 시간. 그 시간적 교차점을 비운의 군주 광해의 유배와 접목하려 억지를 부렸다. 화면 구도 또한 파격적이다. 선창 위에 좁은 면적의 원경에는 한라산의 능선을 숨은그림찾기처럼 그려서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어등포에서 저녁에 바라보는 한라산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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