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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는 제주 유일 승전사 '을묘왜변' 가치 이어야"
제주도·제주연구원, 22일 을묘왜변 학술세미나 개최
강만생 도 문화재위원장 "사라질 위기에 처한 역사"
관련 자료·유적지 거의 없고 정명 문제 등도 과제로
발표자 "역사적 가치 재조명하고 역사문화자원화를"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2. 09.22. 17:27:40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연구원이 주최·주관하고 한라일보가 후원한 '을묘왜변과 지역사회의 대응, 역사문화자원화' 학술세미나가 22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열렸다. 이상국기자

[한라일보] 제주 역사의 유일한 승전사인 '을묘왜변'을 역사문화자원으로 계승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를 위해선 제주 을묘왜변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콘텐츠 발굴 등이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을묘왜변과 지역사회의 대응, 역사문화자원화' 학술세미나에선 이 같은 의견이 제기됐다. 임진왜란보다 37년 앞선 1555(명종 10)년에 발발한 을묘왜변의 역사성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연구원이 주관·주최하고 한라일보가 후원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역사 '제주을묘왜변'… "학술 연구 나서야"

이날 기조강연에 나선 강만생 제주자치도 문화재위원장은 을묘왜변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역사"라고 진단했다. 을묘왜변을 함께 겪은 전라남도와 달리 제주에는 현재 남아 있는 자료나 유적지가 없는 탓이다.

강 위원장은 "을묘왜변이 발생한지 467년의 긴 시간이 흐른 데다 당시 화북포로 침입한 왜구(1000여 명)를 제주 민관군이 3일만에 격퇴시키면서 전쟁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면서 "제주에서 일어났던 일을 중심으로 작성된 정식 논문은 1건 뿐이고 역사 유적도 제주시 오현교 구석에 세워진 작은 표석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을묘왜변의 정명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당시 왜구 노략질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났는데, 전남 해안 지방을 침략했다가 쫓겨난 왜구 일부가 다시 제주로 침략해 들어온 게 제주의 을묘왜변"이라며 "역사적인 용어로 '을묘왜변'이라고 쓰고 있지만 제주에서 부르는 이름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늦었지만 을묘왜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역사적인 사건이 자원화될 수 있도록 하는 당위성이 있다"며 "을묘왜변을 제주 역사의 중심으로 소환하고 이를 통해 도민의 긍지와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학술 연구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유적지 보존과 조사 발굴 작업을 추진하는 데에도 당국이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위원장은 을묘왜변의 가치를 조명하는 일이 새 역사 인식을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군관민이 함께 힘을 합쳐 적을 물리쳤던 제주 을묘왜변을 통해 왜구의 침략을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했던 패배적인 역사 인식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것 역시 을묘왜변에 대한 문제를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22일 열린 '을묘왜변과 지역사회의 대응, 역사문화자원화' 학술세미나에서 주제발표와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이상국기자

|"제주 대첩은 조선 을묘왜변의 승리… 인물도 조명해야"

'제주을묘왜변의 재조명과 역사적 의의'로 발표에 나선 홍기표 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도 을묘왜변의 가치를 높게 샀다. 홍 전 교수는 "조선 건국 이래 약 200년 동안 외적의 침입이 없던 제주에는 대규모 왜구의 침략이 큰 위기였다"면서도 "제주민은 일심동체로 협력해 대첩을 거둬 이를 극복했다"고 했다.

홍 전 교수는 제주을묘왜변을 "비단 제주만의 승리가 아닌, 조선 을묘왜변의 최종적 승리"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그는 그 이유로 조선왕조실록(명종실록)에 담긴 '영암의 수성과 제주의 파적'이라는 기록을 언급하며 "사실상 을묘왜변의 결과는 제주의 승전으로 종결됐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며 "일본과 한반도, 중국과 연결되는 해상 요충지 제주를 왜구로부터 지켜냈다는 점에서 당시 동아시아 평화 정책에 큰 기여를 했다"고 강조했다.

을묘왜변은 제주인의 활약이 돋보이는 사건인 만큼 인물에 대한 조명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석윤 제주대학교 강사는 '제주을묘왜변과 역사인물'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을묘왜변과 관련된 제주 인물들은 관찬의 기록에서도 중요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구비 전승되는 설화나 민속에서도 그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제주 을묘왜변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은 8명인데 이 중 목사 김수문, 판관 이선원, 군관 강여, 정로위 김직손을 제외한 갑사 김성조·이희준, 보인 문시봉, 정병 김몽근 4명은 제주 출신으로 전해진다.

김 강사는 "논공이 관료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제주인의 자발적인 헌신과 노력에 대해선 다소 낮게 평가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제주 출신 인물에 대한 조사는 관찬사 뿐만 아니라 읍지류나 문집 등을 통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주 을묘왜변 전투에는 정규군뿐만 아니라 낮은 직급의 병사와 일반 백성도 함께 참여했다"며 "섬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외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제주의 자체적인 인적 물적 자원을 이용해 왜구를 물리쳤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인물에 대한 연구는 을묘왜변이 지닌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수정 제주여성가족연구원 경영지원실장도 '조선 전기 왜구와 제주의 방어체계'에 대해 발표하며 "제주도민들의 활약이 매우 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오 실장은 "제주는 섬이라는 여건과 왜구의 침입이 유리한 지리적 요충지로 인해 왜구 방어가 매우 큰 현안이었다"며 다른 지역과 달리 행정과 군사체계가 일원화된 제주의 군사체계를 설명했다.

오 실장은 "제주는 목사를 비롯한 수령과 토호세력, 도민 모두가 왜구침략에 대한 방어 태세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을묘왜변 당시 왜구들이 화북포로 들어와 제주목 주성에서 전투할 때 목사 김수문을 비롯해 군사 70명과 치마(馳馬)돌격대 등이 승전했다는 기록은 방호소에 배치된 갑사와 기병들, 보병들의 활약을 전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했다.

|"'문화적 기억' 위한 콘텐츠 개발 중요… 승전기념사업회 조성을"

제주 을묘왜변에 대한 '문화적 기억'을 위해 역사문화자원화 콘텐츠 개발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제주을묘왜변의 역사문화자원화'라는 발표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승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지역공동체의 협력 정신의 궤적을 살펴보는 것이자 오늘날의 지역공동체에 자긍심 형성과 미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현 책임연구원은 "충분한 사료조사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원형을 자원화한 뒤 그것을 기반한 콘텐츠를 발굴한다면 현재적 활용 가치가 높을 것으로 본다"며 향후 발굴할 수 있는 콘텐츠로 을묘왜변 관련 기사와 책, 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게임, 승전 기념 축제, 전시관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문제는 산재해 있거나 아직 발굴되지 못한 역사문화자원과 콘텐츠를 관리할 주체가 부재하다는 것"이라며 "제주 유일의 승전사를 기념하는 '제주을묘왜변 승전기념사업회'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 책임연구원은 "사업회가 만들어지면 주체가 명확해 지고 체계에 따라 지속적인 사업 수행이 가능해 질 것으로 본다"며 "지역 정부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22일 열린 '을묘왜변과 지역사회의 대응, 역사문화자원화' 학술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상국기자

한편 세미나에는 전라남도에 있는 연구소와 대학, 학회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참석하기도 했다. 이들은 '을묘왜변과 영암의 대응' 등을 주제로 한 발표와 토론을 통해 을묘왜변에 대한 가치 조명에 머리를 맞댔다.

이날 축사에 나선 김건일 한라일보 대표이사는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제주 사람들의 승전 역사를 더 많이 발굴하고 그 가치를 도민 사회사회에 확산해 제주의 빛나는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 한 걸음 나아갔으면 좋겠다"며 "한라일보는 여러분이 발굴해 낸 소중한 제주 역사를 담는 그릇이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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