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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경의 건강&생활] 이어달리기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06.29. 00:00:00
어제 저녁, 가깝던 지인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함께 갔던 친구는 고인의 중학생 손자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돌아가신 할머니께 잘 사는 모습 보여 드리겠다' 말하더라고 필자에게 전했다. 눈물 흘리는 손자나 다른 유가족들, 찾아온 지인들 모두 슬픔 중에도 밝았다. 고인의 삶이 어떠하셨고 남은 이들에게 어떻게 이어져 갈지 미소와 함께 고개 끄덕여졌다.

"우리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규율 지키는 것은 어려워요"라는 어머니의 이야기와 "직장에서 후임들이 잘못해도 따끔한 지적이나 훈계를 할 수가 없어요. 공황장애 생겼다며 민원 넣거나 그만둬버려요"라는 오십 대 회사원의 이야기는 서로 연결돼 있다.

원하는 것을 가져야 하고 갖지 못하면 요구하도록 자라난 사람들은 자존감(自存感)이 결여된다. 자신의 존재 상태도 모르면서 자신을 존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존감(自尊感) 결핍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갑자기 우울해지고 죽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요. 불안하고 무기력해요", "생각이 끊임없이 나요. 후회되는 일, 창피한 일, 미래에 대한 걱정이 멈춰지지 않아요"

이는 요즘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이야기이다. 평소 "왜 사는 지"에 대해 너무 생각을 안 하다보니 총량보존의 법칙이 발동해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해일처럼 몰아쳐 오는 것일까?

최근 재미있게 시청한 드라마가 있다. 제목부터 인상적이었던 이 드라마는 "나는 누구인가"와 "나의 해방"을 다뤘다. 잘 생긴 부자에게 사랑 받아 별 볼 일 없던 인생이 활짝 피거나 배신과 복수를 롤러코스터 타듯 이어가는 드라마들 사이에서 깊은 산속 옹달샘 같았다. 작가는 행복 낙원이란 내가 누구인지 자각해 나로부터 해방돼 사는 지금여기에 있다고, 이곳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사랑이라고 용감하게 말한다.

전 세계 인구 약 77억 명을 돈으로 환산해 77억이라고 한다면 한 사람은 각기 1원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일 원짜리도 안될까 봐 전전긍긍하거나 백 원 혹은 만 원짜리이고 싶어 타인과 비교하고 경쟁한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한 등장인물이 이렇게 말한다. "1원짜리를 전 세계 인구만큼 쌓으면 높은 산만해져. 근데 나는 1원짜리가 아니라 저 산인가 봐" 이 얼마나 뭉클하고 멋진 자백인가.

가장 큰 불행은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내 안에 온통 사랑밖에 느껴지지 않아.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라는 드라마 속 대사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타자를 사랑하는 나 자신이 사랑스럽다. 그러니 사랑을 갈구하지 말고 사랑하자.

죽음은 삶을 일깨우는 가장 강력한 각성제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만큼 큰 배움이 있을까. 누군가의 돌아감은 단지 슬픔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남아서 살아갈 이들에게 감사이자 격려이고 희망이다. 당신도 잘살다 돌아오라는 사랑과 축복의 이어달리기이다. 부디 나와 여러분의 죽음도 그러하기를.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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