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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2주년] "태극기 휘날리며 나라 지킨 용사 기억해주길"
참전 유공자회 제주도지부장 송치선 씨가 말하는 '그날'
4·3 광풍 속에도 많은 제주 청년들 나라 지키고자 입대
지난해 형 유해 찾아… "유가족 시료 채취 적극 참여를"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입력 : 2022. 06.23. 17:54:52

대한민국 6·25 참전 유공자회 제주특별자치도지부 송치선 지부장이 6·25 전쟁 당시 상황을 생생히 설명하고 있다. 김도영기자

[한라일보]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싸워야 했던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우리가 지켜낸 대한민국에서 많은 국민들이 행복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대한민국 6·25 참전 유공자회 제주특별자치도지부 송치선(93) 지부장이 담담하지만 힘 있는 어조로 말했다.

송 지부장은 1950년 8월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했고 형인 고 송달선 하사는 같은 해 9월 육군으로 입대했다. 송 지부장은 "당시 제주는 4·3의 아픔과 혼란이 남아있었지만 전쟁이 났다는 이야기에 다양한 이들이 입대했다"며 "해병대 3기가 1500명, 학생들이 많았던 4기가 1500명, 여성 해병 126명 등이 1950년 9월 1일 산지항에서 출정했다"고 말했다.

송 지부장은 이후 부산을 거쳐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다. 밤에 상륙정을 타고 인천시 만석동 해안으로 상륙해 개인 참호 속에서 밤을 보낸 뒤 다음 날 새벽 날이 밝자 작전을 시작했다.

송 지부장은 "당시 3인 1조로 인민군을 수색하고 시가전을 벌였다"며 "집 안에 숨어있던 주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 환영한다고 말했던 순간 너무나 반가웠다"고 기억했다.

송 지부장은 이후 서울 수복작전에 투입돼 미군과 함께 많은 전투를 치렀다. 이후 1953년 2월쯤 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한 달 차이로 입대했던 형인 고 송달선 하사가 1951년 5월 11일 설악산 전투에서 전사해 동생인 송 지부장이 의가사제대를 명 받은 것이다.

형인 고 송달선 하사의 유해는 지난해 10월 28일 71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주관하는 6·25 전사자 유가족 찾기 및 유전자 시료 채취를 통해서였다.


송 지부장은 "형님의 아들인 조카에게 유전자 채취를 권유했다. 2019년 조카가 제주보건소에서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형님의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며 "유가족 분들 중에 유전자 시료 채취에 회의적인 분들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잊으려는 마음인 것 같은데 시료 채취에 참여한다면 반드시 가족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올해까지 총 1만1174구의 유해가 발굴됐지만 신원이 확인돼 가족을 만난 유해는 192구에 불과하다. 유전자 시료 채취를 원하는 6·25 전사자 유가족들은 국방부(1577-5625)나 가까운 주민센터에 문의하면 자세한 방법을 안내받을 수 있다.

6·25 참전 유공자회 제주도지부에는 총 768명이 가입해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고 고령의 유공자들이 남아 있다.

송 지부장은 "혼자 사시는 분들도 있고 요양원에 있는 등 쓸쓸한 분들이 많다. 나라를 지킨 호국 영웅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아 주시길 바란다"며 "호국 영웅에 대한 관심과 예우가 있어야 지금의 젊은이들도 나라를 위해 앞장섰을 때 존중받을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고 애국심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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