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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주 마을탐방] (4)제주시 한경면 금등리
제주색 완연한 팽나무 빼곡… 만고풍상 겪은 흔적 역력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입력 : 2021. 09.27. 00:00:00
‘한독’·‘한독잇개’라 이름 불리며 설촌 360년 역사 자랑
골목마다 빼곡한 팽나무 장관… 선인장 군락도 한몫

‘제주어마을’ 사업 안착 성공 1년 살기 프로그램 구상
금등리 마을버스·야간 조명 등 마을 만들기 사업 박차
주민 누구나 대소사 능동적 참여… 함께하는 문화 정착




제주도 북서부의 해안마을 한경면 금등리, 이 마을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토박이들 중에서 드물다는 이장님의 우스개가 사실인지 재확인하는 것으로 금등리의 리포트를 시작한다. 팔순에 접어든 내 부모님께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금능리? 알주게.' 금등리라고 재차 말하자 그게 어디냐며 되묻는다. 이장님의 코멘트가 확인되는 순간이다. 금등은 그렇게 비밀 속에 숨어있는 보물상자 같은 마을이다.

금등리 해변에서 바라본 풍력발전기와 비양도

마을 안의 팽나무들

'한개' 또는 '한독잇개'라고 불려 온 금등리는 설촌 360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이다. 깊은 내력의 질곡은 마을 곳곳에 웃자란 팽나무의 행렬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제주 사람들에게 팽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의 신수(神樹)이며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거나 방담을 즐기는 쉼팡의 정자 같은 존재다. 번화한 도심이나 관광지에서는 야자수가 즐비하지만 제주색이 완연한 시골 마을이라면 당연히 팽나무가 뿌리내리고 있다. 팽나무로 제주색의 농도를 진단한다면 금등리가 으뜸일 만큼 이 마을은 골목이며 올레며 여염집 울타리 안까지 팽나무가 빼곡하다. 여기에다 한림읍 월령리부터 이어지는 손바닥선인장 군락이 한껏 꽃 자랑을 하고 있어 그림처럼 아름답다.

금등리는 일주도로를 중심으로 북서쪽의 화동과 남동쪽의 수장동 두 동네로 이루어진 기다란 지형을 지닌 마을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개 또는 한독잇개로 불리다가 대략 1990여 년 금등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여느 어촌마을처럼 해안에는 갯바위와 용천수가 어울린 조간대가 발달해 있어서 손두물원, 개창원 등의 원담이 있지만 생업과 자연환경이 변화하면서 근래에는 쓰임새를 잃고 본연의 모습도 더러 손상됐다. 전통사회에서 마을공동체의 신앙적 뿌리였던 본향당 손두물당도 잡초가 무성해 더는 기원의 마음으로 찾아드는 주민들이 발길을 끊었다는 짐작을 일게 만든다.

금등리 용천수 손두물

금등리 본향 손두물당

작은 마을인 데다 급속한 산업화와 생활양식의 변화로 인해 서서히 옛 모습을 잃어가는 금등리는 전통의 쇠락을 주저앉은 채로 바라만 보지 않았다. 전통을 살리는 것이 마을을 살리는 것임을 깨닫고는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지 방도를 찾았다. 그리하여 찾아낸 아이디어 중 가장 선풍적인 흥행을 일으킨 것이 '제주어마을'이다. 2018년에 첫선을 보인 이 사업은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는 제주어를 지킨다는 취지와 마을의 활력을 되찾겠다는 노력이 결합한 결과물이다. 수장동에 제주어마을 펜션을 만들어 '제주어마을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가 하면 (사)제주어연구소와 함께 마을 어르신들로 하여금 금등리의 전통적인 생활문화를 제주어로 구술 정리하는 일도 곁들였다. 그 결과물은 지난해 '제주어를 쿰다'라는 책으로 발간됐다. 이 책은 농사, 목축, 바다, 물, 통과의례, 세시풍속, 놀이 등의 목차로 구성됐는데 살아있는 제주어를 기록했다는 갈채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과 삽화까지 더해져서 생동감이 넘쳐나고 '알아두면 좋을 금등리 제주어' 항목이 있어서 금등리만의 사투리까지 두루 살필 수 있다. 제주어마을 사업에 호평이 이어지자 근래에는 수장동에 제주어마을 홍보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으며 제주어마을 1년 살기 프로그램도 구상 중에 있다고 한다.

금등리 해녀의 집

금등리사무소

제주어마을 사업이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금등리에는 어느 곳에도 없는 또 하나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금등리 마을버스'다. 이 버스는 일주일에 두 번 운행한다. 버스노선은 마을 어르신들이 주로 다니는 대정오일장과 한림오일장까지 왕복하는 코스와 신창리에 있는 목욕탕까지 나들이하는 코스의 두 가지가 있다. 이밖에도 최근에는 옆 마을 두모리와 함께 해상에 설치된 풍력발전기에 조명을 설치해 야간명소로 변신시키려는 구상을 하는 등 제주의 어느 마을보다 알차게 마을 만들기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풍성한 마을 콘텐츠로 다른 마을들의 부러움을 사는 배경에는 온 마을 사람들의 너나없는 노력이 가장 동력이다. 이 동력의 배후에는 무려 13년째 마을을 이끄는 고춘희 이장님이 단단히 버티고 있다. 내가 탐방차 리사무소를 찾아갔을 때에도 제주도 마을 만들기 종합지원센터에 온 분들과 열띤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열정적인 토론을 흐뭇하게 지켜보다 다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고춘희 이장

고춘희 이장의 말투가 제주 사람들과 달랐다. 회의가 끝난 뒤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장님의 이력을 캐묻자 부모님 고향이 금등리이고 정작 본인은 인천에서 나고 자란 뒤 성인이 된 뒤에 이 마을에 들어왔다고 한다. 안온한 시골마을이 너무나 정겨웠지만 마을 세가 약하고 활기가 부족한 것을 보고 이장직에 도전했다고 한다. 태어난 곳도 아니고 더욱이 가부장적인 정서로 가득한 시골 마을 이장을 여성이 맡았으니 시작부터 냉담한 시선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럴수록 마음의 끈을 단단히 매조지며 헌신과 열정으로 허드렛일부터 큰일까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자 13년째 온 마을의 신임을 받는 이장이 됐다고 한다.

"마을회의를 해도 개발위원뿐만 아니라 부녀회원들까지 참가하게 했고 누구나 마을의 대소사에 대한 발언을 자유롭게 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발언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마을사업에 능동적으로 임하는 모습으로 변신시키려니 애도 많이 썼다. 우리 마을은 면적도 작고 상주하는 인구도 2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중 이주민이 100명이다. 다른 마을에서 벌어지는 선주민과 이주민과의 갈등을 보며 우리 마을은 그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다각도로 함께 어울리는 문화를 만들어왔다. 예를 들면 해녀회에 이주민과 선주민 구별 없이 가입할 수 있도록 해녀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젊은 이주민들은 물론 해남도 두 명이나 생겨났다. 최근에는 해녀들과 합심해 마을 공동어장에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금등리를 찾게 만들 계획 중이다."

13년 차 이장의 헌신적인 모습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마치고 헤어진 뒤 마을 안길을 샅샅이 살피며 누비는 사이 웃자란 팽나무들을 만나며 고춘희 이장을 떠올렸다.

"우리 마을은 팽나무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화동에서 수장동까지 길게 이어지는 팽나무 탐방로를 만들까 합니다."

바람의 결을 따라 꿈틀대며 자라난 해묵은 팽나무들의 옹이 진 이력을 보노라니 고춘희 이장이야말로 저 나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깊어졌다. <글·사진=한진오(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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