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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폭죽(爆竹)의 계절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입력 : 2021. 07.21. 00:00:00
정치, 경제, 문화, 심지어 종교적인 문제 등에서 대체로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를 분리해서 접근하려 한다. 그러나 인간이든 아니든 모든 것은 지구 위의 소중한 존재로 함께할 수밖에 없다. 21세기에 이르러 인간에게 닥친 문제들을 생각해보면, 토마스 베리의 "나무들은 나무의 권리를, 벌레는 벌레의 권리를, 강은 강의 권리를, 산은 산의 권리를 갖는다"라는 말을 새겨볼 만하다.

다행스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주를 찾는 많은 이들이 제주의 환경과 생태를 청정하고 자연스럽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는 보고라고까지 한다. 자연환경과 생태의 문제가 인류를 위협하리란 위험 신호를 보이는 오늘날 제주에 대한 가치를 제주인은 물론이고 외지인들까지도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나라의 인구 1% 남짓에 불과한 제주도가 미래 사회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환경 보존(preservation)과 개발은 시대에 따른 문명의 변화에 따라 언제나 갈등을 가지고 있거나 그 관계가 모순으로 대치되기도 한다. 그러나 보전(conservation)의 경우는 인위적으로 관리를 한다는 뜻이므로 방향성이나 가치의 기준을 설정하고 정책으로 입안이 되기도 하고 널리 운영하기도 한다. 제주의 환경과 생태에 대한 정책이나 제도 등에서 극히 일부가 보존이라면 대부분은 보전의 개념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증가하면서 거리두기 정책으로 감염을 대비하고 있지만 제주는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골프장 관계인에 의하면 당일 예약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골프장 이용에 관련된 비용 일체가 성수기 수준이라고 한다. 제주에도 소나기가 며칠 내리기는 했지만 해수욕장으로는 거리두기와는 무관하고, 도내 해안도로의 카페들은 젊은 관광객들로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문득, 제주를 찾는 이들이 그리고 이들을 맞는 제주인들이 제주도의 가치, 자연환경과 생태에 대한 의미를 진정 인식하고 있는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제주도를 찾은 사람들이 자연환경과 생태의 가치를 인정하며 제주도를 어루만졌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들이 남긴 것은 숲 깊은 곳의 발자국과 땀을 닦고 버린 물티슈들 뿐이다. 더 우울한 일은 제주인 스스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며칠 전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면서 덤으로 주는 쿠키를 얻고 노을이 내리는 해안도로를 지나다 부스러기가 차 안으로 떨어질 것 같아 차창을 열고 게걸스럽게 먹다가 쿠키 반쪽과 포장비닐이 바람으로 날아가 버렸다. 차를 세우고 이내 주웠어야 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차창을 올리고 그곳을 벗어났다. 오늘 그 일들이 더 또렷해지면서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진정 제주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맞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한 일들이 어디 한둘일까. 두 돌도 안 된 쌍둥이 손녀들이 해수욕장으로 가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놀았다고 하던데 몹시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해수욕장 내 불꽃놀이는 불법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모든 해수욕장에서 이 여름이면 새벽까지 폭죽이 터진다. 그리고 모래사장에 꽂힌 채 버려진다. 하루는 남들이 일어나지 않는 새벽에 해수욕장으로 가서 버려진 폭죽 몇 개라도 주워야겠다.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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