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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다와 문학] (39) 고시홍 단편 ‘표류하는 이어도’
“숨통 붓는 고통 따라도 바다만 있다면”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1.31. 00:00:00

해녀들의 물질가는 장면. '표류하는 이어도'엔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젊은 해녀 주인공이 등장해 구슬픈 맷돌노래를 부른다.

해녀들 걸어온 나날 그랬듯
남편 잃고 살림 맡은 주인공
맷돌노래에 실리는 이어도


1937년생 김모 할머니는 군대 갔던 스물 넷의 남편이 먼저 세상을 등지자 혼자서 아이들을 키웠다. 막내딸을 맡길 곳이 없어 끈으로 묶어두고 물질 가야 했던 일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물질로만 한 세상을 헤쳐온 할머니는 딸들에겐 그 일을 대물림하지 않았다. 악착같이 생계를 꾸리며 물질을 시키지 않고 고등학교까지 보냈다. 2014년 제주도가 묶어낸 제주해녀 생애사 조사 보고서에 담긴 사연 중 일부다.

제주 고시홍 소설가의 단편 '표류하는 이어도'는 마치 그 할머니의 젊었을 적 이야기 같다. 첫 소설집 '대통령의 손수건'(1987)에 실린 단편 중 하나로 '물귀신'이 된 남편을 떠나 보내고 아이 둘과 사는 30대 초반의 해녀 억순이가 주인공이다. 사친회비가 있던 시절을 배경으로 했지만 해녀들의 고달픔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남편 제사가 내일인데 아직 모두 터에 놓았다. 여차하면 숭늉만 떠놓고 제사를 지내게 됐다. 달포 안으로 다가선 시아버지의 담제일이며 비료값, 을선이 남매의 사친회비. 금년엔 해묵은 초가지붕도 갈아덮어야 한다."

억순이에게 돈 들어가야 할 곳은 돌담 구멍만큼이나 많았다. 돈이 나올 곳은 바다 밖에 없었다. 소설은 억순이가 목숨 내던지는 그곳을 '이승과 저승의 문턱, 바다 밑의 설드럭'으로 표현했다. 억순은 뒤웅박(테왁)에 의지해 당장이라도 바다로 뛰어들고 싶다. "열 개의 발가락으로 하늘을 걷어차며 물 속으로 곤두박질 칠 때마다 숨통이 부어오르는 고통이 따를 망정, 바다에서 거둬들이는 것들은 김을 매지 않아도 되고 비료값 걱정을 할 필요도 없기에 더욱 소중한 보물이었다."

맷돌노래는 그런 억순이에게 마음의 보약이다. 딸 을선이에겐 물질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은 억순은 맷돌자루를 돌리며 시름을 덜어낸다. 억순이 부르는 맷돌노래엔 이어도가 등장한다. 전복과 소라로 동산을 이루고 미역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는 그 섬은 배를 타고 가면 갈수록 수평선 너머로 뒤물러 앉는다고 했다. 억순은 맷돌 앞이나 밭이랑에 앉아 김을 맬 때면 이어도를 불러냈다. 꿈결에나 다다를 수 있는 섬이기에 더 간절했다.

마침내 바다에 든 억순의 그물망사리는 전복이 세 개나 담기는 등 묵직했다. 하지만 몸은 점점 바다 밑으로 가라 앉는다. 억순은 학교 그만다니고 돈 벌어오겠다는 딸을 다그치다 뒤웅박이 마당으로 나동그라지며 팥알만큼 금이 간 걸 그제야 떠올렸다. 숨통이 닳게 거둬들인 해산물을 내던질 순 없었다. 억순은 용왕님께 모든 걸 내맡기고 불턱으로 헤엄쳐 간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하는 억순의 노래는 땅에 닿을 수 있을까. 수많은 억순이들의 눈물로 오늘도 제주 바다는 짜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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