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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 밥상을 탐하다] (9) 부산 기장군 해녀의 음식
해녀·식당으로 대 잇는 '할매'의 특별한 전복죽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입력 : 2017. 11.23. 20:00:00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정자 해녀와 가족들. 사진=강동민 기자

"60년 해온 물질은 생명줄이자 가족의 밥줄"
성게넣은 전복죽·전복버섯구이 특화 메뉴
부산 물질 처음 시작한 곳… 38년간 식당 운영


제주해녀들은 19세기 말부터 한반도 남해안 여러 지역으로 출향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현재 생존해 있는 제주출향해녀 대부분은 1960~1970년대 보릿고개 시절 먹고살기 위해서 제주를 떠나 육지부와 일본으로 출향해 현지 사람들에게 물질을 배워주는 등 제주해녀문화를 전파한 주역들이다.

부산광역시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해녀가 가장 많은 곳이다. 2016년 12월말 기준 30개 어촌계의 해녀는 모두 953명. 이중 기장군 18개 어촌계 소속 해녀는 601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출향 제주해녀, 해녀의 2세들, 그들에게서 물질을 배운 현지 해녀들이다. 가족과 떨어진 출향해녀들의 외로움과 향수를 달랬던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제주를 떠났지만 제주바다를 고향으로 여기고, 여전히 입맛은 제주를 떠나지 못한 부산 해녀들이 내어준 밥상 탐색기를 두 차례로 나눠 싣는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김정자 해녀회장의 밥상=부산 기장군 신암어촌계 회원 중 출향해녀 1세대는 3명 정도가 생존해 있지만 고령이어서 물질은 하지 않고 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전경

제주출향해녀 2세대인 김정자 해녀(기장나잠어업협동조합 이사장·69)는 성산읍 시흥리 출신인 모친을 따라 물질을 시작했다. 김씨의 모친은 이곳에서 60년 동안 물질을 하면서 자식을 키웠고 큰 아들 김동주씨는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씨를 만나기 위해 찾은 곳은 기장군 연화포구를 끼고 조성된 천지할매식당이다. 이곳은 즐비한 식당 중에서도 초창기부터 운영돼 38년간 운영되고 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김씨가 취재팀을 맞았다.

"어머니를 따라 10살 때부터 시작한 물질은 생명줄이었고 가족의 밥줄이었지. 대변항 공사로 바다가 매립되면서 처음 물질을 시작한 그 바다 위에서 38년간 음식점을 운영해오고 있어 내겐 이 장소가 더욱 의미가 있어."

전복버섯구이

김씨는 보통 오전 6시에 물질을 시작해 낮 12시 이전에 물질을 끝내고 그날 채취한 해산물을 음식점에서 조리해 판매한다. 모성애가 강했던 모친을 고스란히 빼닮은 멸치를 줍던 아들의 등을 떠밀어 학군이 좋은 곳으로 '유학'을 보내 잘 키워냈다. 억척스럽게 생활하면서도 자녀를 잘 키워내고 싶은 맘이 컸기 때문이다. "어느날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고무통에 아들을 앉혀놓고 물질을 갔다 왔는데 넘어져서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거야. 그때 생각하면 아찔하지." 미안함이 큰 만큼 더 단단해졌다. 그녀는 "당시 다친 아들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 아들만큼은 몸이 고되게 살지 않으면 했는데 항구 근처에 살다 보니 교육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것 같아 유학을 보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성게전복죽

어린 나이에 홀로 지내야 하는 어머니의 결정이 야속할 법도 했지만 큰 아들 천대영(48)씨는 그 결정을 존중했다. 그는 "가장 역할을 했던 어머니는 정말 대단했다"며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어머니가 했다는 데 대한 자부심과 존경심이 크다"고 털어놨다. 그에 대한 존경심이 있기에 세 아들과 며느리들은 모두 식당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손자까지 4대가 함께 참여해서 더 의미가 있는 식당인 셈이다.

김정자 해녀와 함께 음식을 하고 있는 큰 아들.



전복죽을 하고 있는 김정자 해녀의 큰 며느리.



천씨는 어릴 때 먹던 엄마 밥상의 맛 그대로를 손님들에게 내어놓고 있다. 천씨는 "물질이 끝나면 어머니가 그날 채취한 전복으로 구이를 해주셨다. 다른 재료나 조미료 없이 참기름 두 방울 정도만 넣은 전복을 구워주시는데 그 맛이 너무 좋았다"며 "손님상에 내놓은 전복구이에도 첨가물을 전혀 감미하지 않고 어머니 손맛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씨가 어린시절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외가에서 먹던 엄마의 밥상도 그랬다. 김씨는 "어릴 때는 엄마가 독새기(계란) 하나를 삶아주거나 고구마로 떡을 만들어 주는게 참 맛있었다"며 "제주 메밀의 담백한 맛이 그대로 담긴 메밀수제비, 메밀떡도 그리운 음식"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제주메밀과 해산물이 어우러진 고향의 맛을 듬뿍 담은 음식을 만들어내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무옷이 나오기 전에 입었던 고쟁이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김씨는 "50~60년전 당시 보리쌀과 조를 가지고 와서 고무통에 된장을 풀어놓고 성게를 꾹꾹 찍어서 국물을 내고 그것을 걸러내서 국을 끓여 먹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입맛 사로잡는 전복죽 보양식으로 최고=이들 가족이 운영 중인 식당은 맛집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식당의 특화메뉴는 전복죽. 최근에는 성게·낙지 등의 재료를 함께 넣은 메뉴로 다양화 돼 전국 각지에서 더 많은 손님이 식당을 찾고 있다. 이들는 식재료 본연의 맛 그대로만으로 맛을 낸다. 소금과 참기름 정도만이 맛을 내는데 필요한 양념이다.

취재가 이뤄진 날에도 평일이었지만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홈쇼핑업체 등에서 상품화하자는 제안도 있지만 신선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거절하고 있다. 전복죽은 조리시간을 줄이기 위해 쌀을 미리 불려 소금, 참기름, 전복내장으로 미리 볶아두고 있다. 하루에 쓰이는 쌀의 양만 해도 엄청나다.

전복을 손질하는 김정자 해녀.



전복 손질을 하는 김정자 해녀의 손.



미리 불려 볶아놓은 쌀. 하루에 쓰이는 양이 엄청나다.



직접 맛본 성게전복죽은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특별한 맛이다. '전복반 성게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게의 달짝지근한 맛이 전복죽과 잘 어우러진다.

부산 뿔소라는 제주소라보다 분홍빛이 더 강하고 씹는 맛이 부드럽다.

또 그날 채취한 홍삼, 해삼, 소라, 낙지 등을 썰어내는 해산물모듬도 인기 메뉴다. 어머니 김씨는 큰 소라들을 취재팀에 내보였다. 제주에서 만났던 '뿔소라'와는 달리 뿔이 나있지 않았다. '뿔소라'가 씹히는 맛이 더 좋다면, 김씨가 내보인 소라는 분홍빛이 더 강하고 부드럽게 씹힌다.

해삼도 특유의 꼬들꼬들한 식감때문에 많은 손님이 즐겨 찾는다. 전복과 버섯과 야채를 넣은 전복버섯구이는 그야말로 전복의 향과 맛에 불맛까지 더한 특별한 맛을 지니고 있다.

김씨는 "해녀만큼 당당한 직업은 없다. '해녀엄마'들의 힘은 그 어떤 힘보다 클 것이다. 앞으로 20년은 더 현장에서 물질을 하고 식당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이현숙·손정경 기자, 사진=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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