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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6)'문화전당' 개관에 힘보탠 기업인들
제주시민회관 탄생에 기업과 예술의 동행 있었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7. 07.04. 00:00:00

제주시민회관에서 열린 1966년 제5회 한라문화제 개회식 장면. 무대막에 기증자인 재일교포 김봉학씨가 운영하던 '천마합성수지주식회사'란 글자가 새겨져있다. 사진=제주예총 제공

초대 제주은행장 김봉학씨, 개관 전 피아노·무대막 기증해
재일제주개발협회 모국방문단 일행 "시민회관에 써달라"며 마이크·앰프·스피커 전달하기도
기업의 문화예술지원… 제주 메세나 운동 출발점 놓여


1964년 7월 3일 '8만 시민의 문화전당' 제주시민회관이 문을 열었지만 출발이 순탄치 않았다. 개관한 지 얼마되지 않아 시설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해 7월 8일자 지역신문엔 실내 방음 장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개관 첫날부터 소음이 일었다는 기사가 게재됐다. 그 원인을 두고 설계 때문인지, 공사 과정의 문제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개관 초기 영화상영 장소로 쓰였던 제주시민회관의 장비 부족도 불거졌다. 당시 영화 상영에 필요한 물건을 구비하려면 200여만원이 필요했는데 열악한 지방 재정에서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영사기와 영사막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개점휴업'상태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가 또한번 실렸다. 제주시민회관에서 일부 공연과 배구, 탁구 같은 실내 경기만 치러지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시민이 한결같이 열망했던 시민회관'이었기에 기대감이 그만큼 컸다.

착공 전 지역신문에 실렸던 제주시민회관 투시도.

▶열악한 지방재정 속 물품 지원 숨통=1960년대 문화예술 분야에 예산이 집중되기 어려운 현실에서 탄생한 제주시민회관은 제주지역에서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을 뜻하는 메세나 운동의 출발점에 놓이는 문화공간 중 하나다. 제주출신이거나 제주에서 활동하는 기업인이 힘을 보태며 하나둘 모양새를 갖춰갔기 때문이다.

그 첫머리에 '애국가'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지휘자 안익태와 동행해 제주를 찾았던 재일교포 사업가 김봉학(2001년 작고)씨가 있었다. 제주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를 수료한 고인은 1948년부터 천마합성수지를 운영했다. 1969년에는 제주은행을 설립해 초대 은행장과 회장을 지냈다.

1964년 2월, 김 회장은 안익태의 두번째 제주 방문길에서 제주시민회관에 물품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김인지 제주시장에게 밝힌다. 50만원 상당의 피아노와 20만원이 소요되는 무대막이었다. 안익태가 내도했을 때 지휘했던 탐라합창단을 제주시에서 육성시켜주라는 기증 조건을 달았다. 김봉학 회장은 탐라합창단 고문을 맡고 있었다.

김봉학 회장에 이어 다른 기업인들도 제주시민회관 지원에 나선다. 제주석유 홍종언 사장 등이 의자를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1000만원이 넘는 공사비가 소요되는 현실에서 이같은 물품 답지는 제주시의 숨통을 터주는 계기가 된다.

1964년 5월엔 제3차 재일교포모국방문단이 제주에 왔다. 이 때 강우준 제주도지사는 일본 도쿄에 있는 재일제주개발협회가 제주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며 감사장을 전달했다. 고향에 발디딘 동포들은 그에 대한 화답으로 제주시민회관에 써달라며 마이크, 앰프, 스피커를 기증했다.

제주시민회관 무대 옆에 놓여있는 피아노.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제주시민회관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물품이다. 진선희기자

▶재일교포 문화교류사업 특수시책으로="구(舊) 정권에서 버림받았던 우리 제주도는 5·16혁명 이후에 여러분이 상상도 하지 못할 기적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가지는 깨끗이 포장되고 있고, 한라산 횡단도로가 금년 7월에 준공되면 전국마라톤대회를 제주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그때 여러 교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해주십시오."

1963년 1월 재일제주개발협회 초청으로 일본 오사카를 찾은 김영관 제주도지사는 제주출신 교포들 앞에서 이같은 연설을 했다. 제주도지방의정연구소가 펴낸 '도백열전(道佰列傳)'(2006)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김 지사는 5·16군사정변 직후 해군준장의 신분으로 제주지사에 임명된 인물이었다. 김 지사는 제주4·3사건으로 실의에 빠진 제주도민들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목표 아래 제주지역 건설사업을 적극 유치해 낙후된 도시기반을 확충하려는 구상을 펼친다.

1960년대 초반엔 제주도 전체 예산 가운데 지방비가 10%에 머물렀다. 90%가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국비였다. 김 지사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8만여명의 제주출신 재일교포들을 통해 대규모 건설사업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려 했다. 김 지사는 제주도정 2대 특수사업 중 하나로 재일교포 문화교류 사업을 내건다. 그는 제주출신 교포들의 명단을 확보해 고향 발전을 위해 동참해달라는 서한을 직접 띄운다. 1962년 4월 재일동포 모국방문단이 처음으로 제주땅을 밟은 계기였다.

기당미술관·김정문화회관, 메세나로 빚어진 문화공간

제주 출신 재일교포 헌신 이어 2015년 제주메세나협회 출범
97개 기업 문화예술 지원 동참


제주지역 문화공간 중에는 제주출신 재일교포와 인연이 깊은 곳이 있다. 서귀포시 기당미술관과 김정문화회관이 대표적이다.

1987년 문을 연 기당미술관은 서귀포시 법환동 출신 재일교포 사업가 기당 강구범(1994년 작고) 선생이 건립해 서귀포시에 기증했다. 국내 최초의 시립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지난 1일 30주년을 맞은 기당미술관은 '원조30년: 최초의 시립미술관 찾기'란 이름으로 오는 10월말까지 아카이브전을 열고 있다.

제주메세나협회 이전 현판식에서 제주메세나협회 관계자와 제주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라일보 DB

김정문화회관은 서귀포시 토평동 출신 재일교포 김정 여사가 건축비를 기증해 2004년 2월 탄생했다. 서귀포신시가지 중앙도서관 동쪽 부지에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졌다. 400석 규모의 공연장, 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김정문화회관 역시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문화공간 이름을 붙였다.

기업과 예술의 동행은 2015년 12월 '제주메세나협회'의 공식 출범으로 탄력을 얻고 있다. 제주메세나협회는 전국에서 세번째로 창립했다. 이동대 제주은행장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제주메세나협회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제주 문화예술에 대한 수평적·상호적 결연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목적으로 뒀다. 메세나에 동참하는 기업들은 문화예술을 통한 창조경영으로 성장과 발전을 가속화하고 문화예술계는 예술적 역량을 드높여 도민이 보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담당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지난 3월에는 제주시 이도동 제주문화예술재단에 새롭게 입주했다. 제주메세나는 현재 97개의 기업이 참여해 지역 문화예술인과 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올들어서는 '2017년 메세나운동 매칭그란트 사업' 1차 공모를 통해 제주지역 11개 기업이 11개 예술단체·개인과 결연했다. 메세나 매칭그란트 사업은 기업이 예술단체에게 지원하는 금액만큼 제주도가 추가 지원해주는 방식을 말한다. 지난해 처음 시작된 사업으로 제주도는 올해 매칭액을 갑절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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