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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입력 : 2021. 04.30. 00:00:00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폭주하는 10대들의 이야기'박화영'을 만든 이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어른들은 몰라요', 10대들의 감정 서사를 사실적으로 구현한 '애드벌룬'이란 단편을 만든 이우정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최선의 삶'은 다시 10대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들이다. 아니 그런데 '10대의 삶'이라는 말을 쓰면서 나는 왜 벌써 고단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런 영화들과 그런 뉴스들과 그런 감정들을 너무 많이 겪어 왔기 때문일까. 혹은 여전히 '설마'의 기대가 배반당한 것 같다는 안타까운 예감의 흔적 때문일까. 나는 이 두 편을 보기 전 '십대의 삶'에 관한 영화라는 정보만 들은 상태에서 먼저 슬프고 앞서 아팠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누군가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겠다는 의지를 지닌 카메라를 통해 확 펼쳐지거나 꽉 닫혀진, 두 영화 속의 다르지만 닮은 풍경들은 가차 없이 쓰라리고 숨이 막힐 만큼 자욱했다. 그러니 그 장면들은 떠올려 쓰자고 하니 다시 슬플 수밖에.



 '어른들은 몰라요'의 세진은 임신한 상태로 가출해 거리에서 주영이라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고 '최선의 삶'의 강이는 함께 가출해 거리를 떠도는 소영과 아람이란 같은 학교의 친구들이 있다. 그들 모두가 10대이고 모든 일들은 그 거리에서 친구와 함께 일어난다. 그들에게 친구는 서로가 소중한 것 이상인 없으면 큰일이 나고야 마는 절대적 존재이다. 친구인 그들은 웃고 울고 주저하는 감정들을 공유하고 걷고 뛰고 안고 마주하는 행동들을 주고받는다. 거리의 삶을 사는 십대에게 친구라는 호명은 그렇게 뭉치면 겨우 살고 찢어지면 시절이 끝나버리는 비장한 약속의 관계를 뜻하는 것이다. 매일이라는 지독한 정글에서 그들은 각자의 입에 무음의 호루라기를 꽉 물고 있어서 기어코 서로를 부르고 지켜낸다. 말하지 않아도 들리고 느껴지고 달려가 몸을 감싸 안아 위험을 면하는 수습들이 영화 속에서 연이어 생겨난다. 손을 잡고 잡아줄 곁이 있었기에, 옆을 보고 그 속을 믿었기에 아마도 낯선 곳에 도착하는 순간들을 잠시나마 안도하며 머무를 수 있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친구와 손을 잡고 태연하고 안전하게 머무르기에 세상은 결코 무심하지도 넓지도 않다. 포획망에 걸리듯, 지뢰를 밟듯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친구라는 관계 밖의 모든 곳이 살얼음판이다.



 이들을 그저 이용해 먹고자 하는 어른들이 모르는 것은 그들이 얼마큼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지여서 이 우정은 열렬하게 애통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다인 사람들에게 그것마저 뺏는다고? 네가 사람이냐가 영화 속 어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좀 더 나이 많은 인간들이 탐하는 것은 지독하게 단순해서 악취로 가득하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그들이 움직이거나 다가올 때 그 냄새의 고약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눈을 질끈 감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나이 든 욕망들 때문에 유일하고 아름다운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로 비통한 마음이 들게 했다. 어른들이 모르는 최선으로 지켜오던 친구라는 수평의 관계가 일순간 수직이 될 때 그러니까 계급이라는 것이 생겨날 때 친구는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돼 버렸다. 거기에서 기인하는 억측과 오해, 서운함과 말하지 않음이 하루 끝에 새겨질 때 서로에게 유일했던 호명은 더는 들리지 않고 마음으로 불어대던 호루라기 소리도 침묵 속에 잠들 고야 말았다. 친구가 되지 못한 서로가 과연 곁에 함께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정이 추억이 되는 일은 싫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도리 없이 마음이 아프다. 말하자면 우정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어갈 수 있는 유일한 고해성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고백들을 다 묻은 친구의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열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참혹한 어둠 속에서 잠조차 들지 못하게 될까.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시작해 얼룩이 생기고 그것을 지우지 못해 깨어진 아이들의 우정을 볼 때 미안하고 서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세상은 어쩌면 이럴까 싶을 때가 있다. 두 영화 속에서 친구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던 인물들이 친구 마저 믿지 못하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가 그 때 였다. 물론 모든 것이 어른들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또한 어른들의 잘못이 없다고 말 할 수는 전혀 없을 것이다. 어른들은 십대의 우정이 얼마나 강하고 연약한 지, 그 감정의 물성이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 기를 쓰고 모르는 척을 한다. 지나면 다 소용 없는 일이라고 애써 평가 절하하며 굳이 시절에 때를 묻히려 한다. 그리고 그 흠을 만들어 내고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요즘 애들, 어쩔 수 없는 나이, 철 없는 시절을 흉보기 시작한다. 부디 친구들이여 어른들은 모르는 우정의 최선에 모든 것을 걸어도 좋다. 십대의 우정을 다룬 격하게 아름다운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대사인 '난 니가 도끼로 사람을 찔러 죽여도 네 편이야'라는 말이 주는 어떤 확신이 어른들의 비아냥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으니 말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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