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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싫은 나 좋은 나 이상한 나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입력 : 2021. 04.09. 00:00:00

영화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

백은선 시인의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의 서문의 마지막에는 '보세요 나의 우울을'이라고 쓰여 있다. 심지어 그 문장 전에는 '봐도 좋고 안 보면 더 좋다고' 쓰여 있어서 보면 안 좋다는 그 우울을 굳이 확인하고 싶은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작가가 말한 그대로 책에는 그의 우울이 가득했다. 심지어 그의 우울은 우물 같아서 페이지마다 끊임없이 길어 올려졌다. '아니 이렇게까지 축축하고 지독할 일이야 삶이?'라고 한숨이 나왔지만, 다행스럽게도 작가는 자신의 불행을 전시하지 않았다. 섣불리 희망을 말하진 않지만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글의 그 뒤숭숭한 어떤 것들이 나는 좋았다. 제목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거의 매일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을까. 나는 내가 싫지만 좋기도 하고 이러고 있는 내가 너어~무 이상하다고.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정말 가장 어렵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의 그 한 사람은 자신일 것이다. 내가 싫은 이유는 늘 분명하고 좋은 이유는 느닷없고 스스로를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쉽게 밖으로 꺼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매일의 우리 모두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들과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무한의 공감을 보내면서도 스스로는 그것을 구체화하기 어려운 감정들. 우리는 일생 동안 그러한 감정들을 마주치며 살아갈 것이다. 어떤 영화들은 스스로의 속내를 더듬는 주인공을 통해 보는 이들의 감정에게 말을 건다. 나도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다고. 장르적으로 구분하면 그런 작품들을 성장 영화라 부를 것이다.

 물론 성장 영화는 비단 유년에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덜 자란, 여전히 자라고 있는 어른의 성장 영화는 묘하게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그건 어떤 관객들에게는 준비되거나 치장하지 않은 마음의 거울을 비추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성장 영화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그 아찔한 찰나의 앞과 뒤를 사려 깊게 살핀다. 물론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직시하는, 좋은 성장 영화의 미덕을 갖춘 영화들은 어른스럽다는 말이 어울리는 훌륭한 꼴로 완성된다. 이를테면 생생한 감정을 재료로 살린 좋은 성장 영화들은 그 고통의 다른 측면 또한 아름답게 빚어내는 예의 바른 관찰력을 갖추고 있다. 아파서 청춘이다는 아니고 아픈 다음 날에는 덜 아플 수 있다 혹은 아픈 청춘이 당신 만은 아니다 같은 너른 시선 말이다. 그래서 그런 영화들을 마주하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그것을 위로라고 부를 수도 있을 테고 대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근사한 배우 시얼샤 로넌의 대표작 '레이디 버드'가 그런 성장 영화다. 이 방면에 일가견이 있는 '프란시스 하'의 주연 배우이자 '작은 아씨들'의 그레타 거윅이 감독을 맡은 영화 '레이디 버드'는 관객들에게 싫고 이상한 자신의 삶을 좋아하게 만드는 에너지로 가득한 영화이기도 하다. '레이디 버드'는 스스로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지어준 10대 여성 크리스틴의 성장통,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주가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뼈 때리는 대사는 여전히 유효한데 "난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라"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이라고 답하는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의 순간은 오롯하고 쟁쟁하다. 그래 이러면 어쩔 건데! 최고가 뭔데!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며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고3 학생인 10대 예서와 보라 생각을 했다. 입시라는 지옥에서 불을 뿜으며 발버둥 치던 그 친구들이 만약 일등이라는 타이틀 대신 스스로에게 다른 이름을 호명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떨어지지 않고 날아올랐을까. 심지어 예서의 이름이 섬찟하게도 'Yes Sir!'인 건 아닐까 별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미 종영한 드라마의 캐릭터들에게 지금도 애잔함을 느끼는 건 여전히 우리가 사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창작물의 10대들이 대부분 예서와 보라의 모습이어서가 아닐까. 시험에 또 한 번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는 우리의 10대들이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가 10대일 때 '그래 이런 고민 다 됐고 공부나 열심히 하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싫고 좋고 그리고 이상한 자신을 좀 더 고민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고민의 끝에 가보지도 못하고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다행인 건 아직도 여전히 이상한 스스로를 좋아할 그리고 싫어할 자격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싫고 좋고 그리고 이상하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그 고민을 함께할 메이트가 생겼다는 확실한 기쁨을 느낀다. 야 너두!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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