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훈의 한라시론] 제주 마을 원형 찾기

[진관훈의 한라시론] 제주 마을 원형 찾기
  • 입력 : 2024. 02.08(목)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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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도 마을은 보통, 해촌과 산촌으로 나뉜다. 산촌은 다시 양촌(陽村)과 산촌으로 구분되며, 양촌과 산촌을 합쳐 '중산간 마을'이라 불러왔다. 중산간 마을 위쪽은 물이 귀했고 급경사인 데다 국유림이어서 개간이 금지됐다. 대부분 구(舊) 목장지대이거나 버려진 구경지(舊耕地)다. 구 목장지대에선 화입(火入) 농경이 이루어졌으며 구경지 대부분은 화전 지대였다.

1918년 제주도 지도에서, 대략 55개 순(純) 화전마을을 찾을 수 있다. 겸(兼) 화전마을까지 합해 90여 개 자연마을이 지도에 나와 있다.

안좌동, 가시동, 월평리, 용강리, 명도암, 덕천리, 영남리, 대천동 등 행정구역상에 지금도 남아 있는 마을이 있지만, 조숙귀동, 조가동, 하화전, 상화전, 천망동, 연자동, 생수동, 죽성동, 민전동, 고평동, 수기동, 석전동, 길영동, 종남전, 상속악, 하속악, 벽화동, 장산동, 대수동, 리생동, 유신동, 고림동, 굴전동, 마통동, 무동동, 마전동, 관전동, 압부수동, 천서동, 상문동, 세초지, 기목동, 고지동, 평대진전, 진평동, 수악동, 수도동, 개남전, 우전연 등 기록에만 남아 있는 자연마을도 많다.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후 중산간 마을 사람들은 원주지를 찾아 올라갔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농토를 개간하고 집을 복구해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단 희생 흔적이 남아 있어서 복귀를 원치 않는 주민들도 많았다. 이처럼 원주민들이 복귀하지 않아 폐허가 되어 버린 마을이 바로 '잃어버린 마을'이다.

지나간 제주 4·3의 아픈 결과로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 버린 영남리, 연자동, 죽성동, 종남전, 천서동, 상문동, 조숙귀동, 조가동, 하화전, 상화전 등에 다행히도 마을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집터, 피우가, 쇠막 터, 돌렝이 밭, 계단식 밭, 울타리 담, 밭담, 우물터, 쇠물 통 터, 몰방애, 마을당, 생수 터 등은 물론이고 마을 큰길, 마을 안길, 먼 올레, 보딘 올레, 대나무 숲, 양하밭 등이 무심코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방성칠 난과 이재수 난 때, 동서로 말을 몰아 민군을 모집했던 중산간 마을 크고 작은 도로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법정사 항일운동 때 민적부를 들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민군을 모집했던 그 길의 자취가 지금도 남아 있다.

작년 일 년, 한라일보 특별 취재팀과 함께, 이제는 울창한 숲이거나 거친'가시자왈'이 되어 버린 옛 화전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이를 확인했다.

소중하지 않은 농업문화유산이 어디 있으랴 만은, 무엇보다 제주 마을의 원형, 취락 구조, 중산간 마을을 직접, 혹은 우회하며 연결한 소로, 임도, 연로, 간로 등에 대한 실태조사와 표본조사, 기록화 작업이 서둘러 이뤄져야겠다.

제주 마을 원형 찾기! 중산간을 골프장이나 리조트로 그토록 개발하여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게 해 버린 낀 세대의 과제라는 생각이다. <진관훈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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