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 투명한 미술품 금고의 오픈

[이나연의 문화광장] 투명한 미술품 금고의 오픈
  • 입력 : 2023. 05.02(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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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2021년 11월 6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뮤지엄파크에서 미술품 수장고가 그 위용을 드러냈을 때, 현장에 있던 이들은 물론 매체로 실체를 접한 이들 모두 감탄했다.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에서 마련한, 온통 유리로 덮혀 내부가 훤히 비쳐 화려한 외관을 내세우는 건물의 이름은 디포. 대형창고이자 냄비 모양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품은 귀여운 이름은 7층 규모로 지상에 우뚝 솟은 큰 스케일의 압도감을 살짝 눌러주는 듯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완전히 파괴됐던 로테르담이라는 도시에 디자인의 왕국이라는 수사를 더하는데 정점을 찍게 한 건축물은 네덜란드 유명건축가 그룹인 MVRDV의 작품이다. 디팟은 건물이 지상에 놓인 냄비처럼 놓여 있는데, 이 디자인은 해수면보다 낮은 국토에 둑을 쌓아 만든 나라에서 수장고의 침수를 염려하며 내놓은 설계 방식이다. 2015년 시 의회가 공원부지에 건축을 허가했고, 건축비용은 약 1252억원이다. 2013년 MVRDV가 설계 공모전에서 당선됐으니, 총 준비기간은 20년이라고 본다.

1949년에 보이만스의 소장품을 기반으로 지은 미술관에 1958년 뵈닝겐 컬렉션과 후손의 기부를 더 해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뵈닝겐 미술관은, 15만점에 달하는 소장품을 소화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기존 건물에서는 소장품의 10퍼센트 미만밖에 전시할 수 없고, 시설의 노후가 심해 작품 보존에도 문제가 있어서, 2028년 오픈을 목표로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그간 미술관 매체 환경이 다변화했고, 변화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건물의 청사진이 그려졌다. 화재와 수해를 대비하면서도 석면 같은 오래된 건물이 품은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도 대대적 리노베이션뿐이었다. 이 대규모 공사비로 책정한 예산은 약 3450억원이고 공사 기간은 7년에 달한다.

보수공사를 대비하며, 미리 작품을 옮겨 둘 수장고에 대한 계획도 세워져 있었다. 2019년 대규모 개조로 인해 문을 닫게 된 뵈닝겐 미술관 근처에 그 소장품을 감상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건물이 2021년 문을 연 것이다. 세계 최초로 대중에게 대부분의 시설을 접근 가능하도록 했음을 내세우는 신개념의 미술품 창고다. 수장고임을 내세우지만 15만1000점의 작품을 미술관에서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설계한 미술관이라 봐도 좋겠다. 실제 미술관의 기능인 전시와 작품 수집, 관리, 복원, 연구, 교육 등을 모두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시대순의 작품 분류 대신에, 작품에 요구되는 온도와 습도에 따라 공간을 분류한 점은 수장고다운 특이한 지점이다.

관람객이 이동하는 모든 공간이 대체로 유리 방식으로 오픈돼 있어서, 작품의 앞면 뒷면, 아랫면 윗면을 입체적으로 보면서, 작품을 보존 처리하는 과정까지도 모두 공개된다. 디팟의 특징은 완전한 개방, 혹은 투명성이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다. 관리자 통제를 받지 않고 관람객이 임의로 수장고 안을 거닐면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한 디팟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투명한 금고가 됐다. <이나연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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