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56)동물이 인간에게 길드는 방식

[황학주의 제주살이] (56)동물이 인간에게 길드는 방식
  • 입력 : 2022. 10.18(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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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목장 부지와 붙어 있는 우리집의 거실에서 말들이 놀고 있는 게 보인다. 가끔 주인이나 관리사가 말을 타고 목장을 나와 마을길을 따라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누군가 어떤 목적지를 향해 말을 타고 가려면 먼저 말의 상태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말을 타고 길을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말과 가까운 사람이다. 말 우는 소리가 들린다. 심장 가진 것들의 호흡이 가파를 때 그 울음과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어야 가족이 될 수 있다.

동물은 길이 들면 인간에게 순해진다. 하지만 인간을 떠나 몇 개월만 지나면 원래의 야생성으로 돌아간다. 동물이 인간에게 길드는 방식은 동물이 인간을 연민하는 방식과 통해있다. 동물은 강제로 길들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기억을 희생한다. 동물을 인간이 길들였다고 표현하는 것은 실은 오해이다.

우리집 길 건너편 약 2000평의 빈터는 원래 귤밭이었지만 갈아엎고 주인이 땅을 매물로 내놨다. 그리고 개 세 마리를 말뚝에 매어놓고 하루에 한 번 사료를 주고 간다. 개들은 자주 짖고, 한밤중엔 너도나도 목이 터져라 짖는 날이 잦다. 나는 가끔 그 빈터를 걸어 들어가 말뚝에 걸려 있는 개들을 보곤 한다. 앉아서 들여다보면 그들의 눈동자는 인간을 닮아있다. 어떤 식으로든 인간과 연결된 것인데, 개에게 목줄을 채운 사내의 몸속에도 같은 핏줄이 흐르는 것이리라. 몇 달이 지나도록 종일 말뚝에 매여 있는 개들의 호소와 소망은 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개의 핏속에 인간의 기원도 있다.

제주도에 와 애완동물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인간이 키우고 버리는 동물들이 우리에게 속죄를 요구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우리가 그들을 단순히 이용 가치 있는 한낱 '동물'로 생각할 때, 그들도 인간을 그들이 보여준 우애로부터 결국은 배제시키는 날이 오지 않을까. 친구와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은 없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형태로, 생명의 친구들에게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오만으로 인해 생명세계가 망가져가는 것을 적막하게 지켜보는, 우리가 버린 신의 눈망울도 젖어 있을 것이다.

갓 태어난 어린 순록 새끼들은 설원을 이동할 때 엄마의 발굽 소리를 신호로 길을 간다고 하였다. 발굽 소리, 그것은 심장 소리와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기대어있는 생명의 신비는 어머니가 우리에게 베푼 보살핌의 요람 속에서 자라난다. 어미 고양이 루코가 아기 고양이 아루와 장난질을 하며 뒹구는 마당엔 생명이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의 숭엄이 일상적 놀이처럼 배어있다. 그들은 자연스레 스스로의 생명감을 발현한다. 그런 점에서 동물들은 가장 현재적인 명상가들이다. 그들은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를 가장 깊이 있게 감각하며 사는 것 같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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