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주의 문화광장] 미술 용어의 문제

[김연주의 문화광장] 미술 용어의 문제
  • 입력 : 2022. 09.13(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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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미술은 1872년 독일어 쿤스트게베르게(Kunstgewerbe)를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새롭게 만든 말이다. 쿤스트게베르게는 현재 일본에서 공예예술로 번역되고 있으니 당시 오역한 셈이다. 어쨌든 미술은 공예예술, 예술의 번역어로 사용되다가 1887년 이후에야 지금과 같이 시각예술만을 의미하게 됐다. 짐작할 수 있듯이 번역을 위한 신조어였던 미술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사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서양화가였던 김찬영의 1921년 글인 '작품에 대한 평자적 가치'에는 미술이라는 용어가 당시 어떻게 이해됐는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1910년대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직업이 미술이란 말을 들은 순사군(巡査君)은 크게 술(術)자에 의심을 품고 순사군이 가로되 '미술은 요술의 유(類)인 줄 알거니와 그러한 것을 배우려고 유학을 하였나.'라고 하니 나는 몸에 소름이 끼쳤다." 이처럼 이미 1880년대 우리나라에 미술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으나, 1910년대까지도 미술은 사람들에게 무척 낯선 단어였다.

130여 년이 지나 이제는 미술이라는 용어를 누구나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오늘날도 20세기 초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종종 한자어 뜻에 얽매어 미술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기술' 정도로 생각한다. 따라서 아름답지 않은 미술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 '저것도 미술이냐.'라며 무시한다. 미술이라는 번역어가 등장했던 때 이미 유럽에서 미술은 사실주의, 인상주의 등을 지나오면서 아름다움과 멀어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미술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고 있었다면 이같이 미술을 오해하는 일은 줄고, 다양한 매체, 표현, 주제로 확장된 미술을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이제는 일본의 번역어 대신 서양에서 미술 용어를 바로 가져와 사용한다. 며칠 전 '프리즈 서울'이 열려 큰 화제가 되었는데, '프리즈 서울'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용어인 아트 페어(Art Fair)는 미술 견본시장, 미술 박람회 등과 같이 번역하지 않고 아트 페어라고 음차해서 사용한다.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등의 용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번역어가 있는 용어까지도 음차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화랑이라는 이름이 대부분 ○○갤러리로 바뀌었다. 19세기 말에 일본의 번역어를 처음 접했던 사람들보다 21세기 초 음차한 용어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그 뜻을 더 잘 이해했을지 궁금하다.

일본에서 번역한 용어든 중국에서 번역한 용어든 필요하다면 받아들여야 하고, 서양 용어를 음차해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한 뜻을 전달하거나 이해하기 쉽다면 당연히 음차해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우리나라 미술계가 서양의 지식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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