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다시 읽은 동물농장

[김양훈의 한라시론] 다시 읽은 동물농장
  • 입력 : 2022. 09.01(목)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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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누리꾼들 사이에서 동물에다 대통령 이름을 비틀어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쥐박이니 닭그네니, 하며 조롱했다. 국민을 통째로 개돼지라 부른 고위 공무원도 있었다. 근래에는 양 머리와 개고기가 푸줏간에 걸리고, 박물관에 코끼리까지 등장했으니 불손하기 짝이 없다.

이런 판이니, 조지 오웰의 정치우화 '동물농장'이 떠오른다. 이 우화에서 가장 똑똑한 존재는 세 마리 돼지인 나폴레옹, 스노볼, 스퀼러였다. 그들은 스탈린과 트로츠키, 그리고 공산당의 선전원을 의미한다. 까마귀는 종교, 메이저 영감은 칼 마르크스나 레닌을 말하고, 농장주 존스는 쫓겨난 황제 니콜라이 2세, 어리석은 민중은 양, 그리고 나폴레옹을 보위하는 공포정치의 하수인은 아홉 마리 충견이다.

평론가들은 오웰의 이 우화를 소련의 상황으로 한정하지 않고 현재적 의미로 확장했다. 나치정권 하에서의 히틀러를 나폴레옹, 나치 돌격대장 에른스트 룀을 스노볼,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스퀼러로 보는 식이다. 어느 시대든, 전체주의는 부패하고 타락한다고 보았다.

지도자들이 내세웠던 '동물주의 7계명'은 갈수록 날조되고 왜곡됐다. 첫 번째 계명인 '두 다리로 걷는 것은 무엇이든 적이다'라고 외쳤던 돼지들은 끝내는 인간 흉내를 내며 두 발로 걷기 시작한다. 그걸 본 양들이 소릴 질렀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 좋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일곱 번째 계명 뒤에 '다른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문구를 덧붙인다. 모든 계명은 독재자의 입맛에 맞게 변질되고, 왜곡된 구호는 정치를 부패시켰다.

사람들은 검찰공화국의 도래를 말하며 검찰독재와 기득권 카르텔을 걱정한다. 동물우화에 현실 정치판을 대입해본다면 억지춘향일까. 권력을 내어준 문 존스는 양산으로 쫓겨나 맹견들에 시달리고, 집권에 성공한 새 지도자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 안달이다. 그럼에도 거짓에 맞서 진실을 말하려는 언론이나 시민들이 자기검열의 유혹을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어떤 이가 도자기 박물관에 코끼리를 등장시켰는데, 좁은 박물관이라 덩치 큰 코끼리가 움직일 때마다 귀한 도자기들이 와장창 깨져나간다. 반드시 악의가 있어 그런 게 아니고 그저 잘못된 만남 때문이란다. 그래서 본인도 버거워하고, 나라도 버거워하고, 국민들도 코끼리를 버거워한다는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코끼리 뒤에 숨은 주인의 뜻이야 어이 알랴!

파시즘은 최고 통치자가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다'라고 결정해버리면, 그것이 진실이 되는 체제다. 동물농장의 숫말 복서는 근면하지만 순진하고 무지했다. 그는 '나폴레옹 동지는 언제나 옳다'를 좌우명으로 삼아 몸이 부서져라 일했지만, 말년에 과로로 쓰러져 폐마 도축업자에게 팔려 간다. 지도자 동지의 감언이설에 맹종하다 기만당한 노동자의 말로였다. 천고마비의 계절, 복서의 명복을 빈다.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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