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불온한 시대, 연대의 가치

[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불온한 시대, 연대의 가치
  • 입력 : 2022. 08.31(수)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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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푸른/ 하늘 푸른/ 바다 너머/ 푸른 오름에/ 푸른/ 무덤 푸른/ 풀내음/ 허파 가득 푸른/ 무얼 더하거나 빼거나/ 마냥 푸른/ 풀물 드는/ 푸른/ 풍경 -김경훈의 시 '벌초伐草'

유난히 뜨거웠던 올 여름도 어느새 바람 끝에 가을이 묻어난다. 제주도는 타 지역과 달리 '모둠벌초'라는 독특한 벌초문화가 있다. 음력 8월 1일이 되면 친인척들이 모두 모여 벌초를 하는데 "추석 전이 소분 안허민 자왈 썽 멩질 먹으레 온다. (추석 전에 소분을 안 하면 조상이 덤불을 쓰고 명절 먹으러 온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닌 행사이다. 외지인의 눈에 생경스럽기만 했던 벌초문화는 제주생활이 차곡차곡 쌓여가며 자연스레 제주만의 고유한 공동체문화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코로나19, 화장 문화의 확산, 세대 갈등 등 시대, 사회적 변화로 인해 규모는 점차 간소화되고 있으나 현재까지도 벌초 문화는 굳건히 이어지고 있다. 추석을 앞둔 8월 끝자락, 제주의 공동체문화인 벌초가 여느 해와 달리 마음에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각자도생'이 고착화돼가는 시대의 혹독함 때문일 것이다.

21세기에 일어난 참혹한 전쟁은 반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로인한 파장은 최악의 경제위기로 이어졌고 여기에 이상기후까지 더해지며 그야말로 전 세계가 불안한 날들을 견뎌내고 있다. 끝나지 않는 팬데믹과 지구는 수차례 이상기후로 경고를 보내며 기후 변화 위기를 알리고 있는데 인간은 불순한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쟁, 전염병, 인플레이션, 산불, 가뭄, 홍수로 덧칠된 이 불온한 시대에 우리가 끝끝내 잃지 말아야 한 '본성'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에 선택할 수 있는 연대의 가치를 다시, 상기해본다. 주어진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개인의 생각은 무모하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각자의 삶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현재의 최선일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개인과 국가, 국가와 세계는 서로 연결돼 공존한다는 것이다. 불온한 시대에 통합과 연대가 어쩌면 공상일 수 있다.

그러나 애초 전쟁에서 국민을 지키기 위한 생명정치에서 출발한 것이 연대의 개념이었음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변화했으나 연대의 의미는 공동체의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위험과 부당함에 맞서 자발적이고 참여적인 원조에 있음을 상기할 때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욱 간절한 가치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더 큰 재앙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각자도생보다 작더라도 힘을 합치는 연대의 가치가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를 소망해본다.

치솟는 물가에 시름 깊은 추석이겠으나 '푸른 하늘' '푸른 오름'처럼 함께 모인 가족공동체 모두가 하나의 '풍경'이 되기를, 그 '풍경'들이 소외되고 고립된 어두운 곳까지 모두 품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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