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문화광장] 수집과 소장이라는 위대한 문명의 위기

[김준기의 문화광장] 수집과 소장이라는 위대한 문명의 위기
  • 입력 : 2022. 08.02(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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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모으는 일은 인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문명이다. 인간의 행동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욕구 충족을 위한 행동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존립을 증거하는 노동으로서의 행동이 있다. 전자는 모든 생명체에게서 발견되지만, 후자는 인간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성립하게 하는 고도의 목적의식적인 생산행위로서 고유성을 확보한다. 노동하는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행동하는 생명체들과 변별하는 노동결과물의 축적을 이룬다. 그런데 이런 축적은 사적 소유와 연동해 불평등과 불균형을 낳는 계기점이기도 하다.

'모은다'라는 행위의 목적의식성은 '간직한다'라는 사적 소유로 연결된다. 사적 소유는 원시공동체 사회를 계급사회로 진화하는 결정적 변수였다. 그것은 곡식을 저장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땅과 집을 비롯한 유형의 자본으로, 나아가 화폐나 주식 같은 무형의 금융 자본으로까지 진화했다. '나의 것'으로 특정하여 모으고 간직하는 일은 이렇듯 오랜 역사를 거쳐 오늘날에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NFT와 같은 가상화폐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사적 소유라고 하는 경제적 행위는 인류문명을 지탱하는 단단한 고리로 자리를 잡고,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으로 귀결한다.

한편 문화적 차원에서 사적 소유는 또다른 차원을 열어준다. 물건을 모으고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행위는 경제적 가치를 넘어 더없이 소중한 문화적 행위로 자리잡았다. 모으고 간직하는 수집(收集)과 소장(所藏)은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문화적 행위이다. 수집과 소장은 경제적 이익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정신적 충족을 위한 문화 생산을 향한 일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하여 '물질에 격하여 앎에 다다른다'는 지혜도 바로 수집과 소장 문화와도 직결한다.

유사 이래 수많은 수집가들과 소장가들은 수집품·소장품을 통해 정신문화를 일궈왔다. 2020년에 벌어진 이건희수집품의 열풍 또한 문화생산 행위로서 수집과 소장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어림짐작으로 수십조에 달한다는 물건들을 통해 이건희수집품은 끊어진 역사를 잇고, 모자라는 공공 자산의 씨줄 날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냈다. 정부와 정치권과 시민들 모두 수집과 소장을 결과를 공공에 기증하면서 일어난 이건희 신드롬에 열광했다.

그러나 기쁨은 여기까지다. 오늘날 현실 속의 수집과 소장 문화를 생각하면 참담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문화생산으로서의 수집과 소장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미술시장에서 정신적 가치를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경제적 이익을 위한 투기에 지나지 않는 얄팍하고 저급한 행태가 미술시장을 휩쓸고 있다. 수집이라는 위대한 문명은 지금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술시장 규모가 한해 수천억 단위에 머물다 올해부터는 1조원을 상회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한 가운데, 수집과 소장의 문화적 가치를 상실한 채, 한국의 미술문화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김준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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