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자율’과 ‘책임’ 사이에서

[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자율’과 ‘책임’ 사이에서
  • 입력 : 2022. 07.27(수)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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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2년 1개월 동안 지속됐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지 불과 석 달 만에 확진자 수는 해제 이전 수준으로 올라섰다. "국민들의 희생과 강요가 아닌 자율과 책임을 중시하며, 중증 관리 위주로 생명과 건강을 살피는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 기본 철학은 다름 아닌 '과학 방역'이다.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것'이란 사전적 의미의 '자율'은 그 방향성이 무척이나 모호하다. 그 모호함은 '과학 방역' 역시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결국 스스로 감염되지 않도록 예방에 나서는 것을 '자율 방역'이라 지칭한다면 과연 '각자도생'과 무엇이 다른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멈춰있던 일상이 활력을 되찾는 듯 했다. 미루었던 모임과 행사가 재개됐고 숨을 고르던 하늘 길도 열리며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늘어났다.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 소소한 행복의 가치를 모두가 간절하게 배웠던 시간이었기에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은 배가됐다. 온전히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자유가 보장되는 일상은 가능하리란 기대로 '위드 코로나시대'에 대한 전망은 한동안 희망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을 맴돌던 바이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빨을 드러냈다.

유독 뜨거운 올해 여름, 따끔거리는 목상태를 쉽사리 냉방병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건강검진을 앞두고 혹시나 했던 항원검사에서 양성판정이 나왔다. 나의 감염여부에 앞서 만났던 인연들이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민낯을 마주하자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몸도 아프고 마음은 더욱 아팠던 격리기간동안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창구인 TV에서는 연일 현실화되고 있는 코로나 재유행에 대한 뉴스가 보도됐다. '과학 방역'을 기본 철학으로 내세운 정부는 이제 역학조사도, 격리 이후 별도의 음성 확인도 하지 않는다. 대면진료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확진 이후 40℃를 오가는 고열에 앓고 있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간 지인은 두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밖에서 대기해야했다. "응급 시에는 자체 입원도 가능하게 하는 등 이송과 입원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중대본의 발표는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거리두기는 경제와 직결돼 있기에 정부는 '자율 방역'에 힘을 실으며 4차 백신 접종을 권고하지만 문제는, 3차 접종자의 돌파감염으로 인한 백신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과 언제 어디에서 감염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그리고 증상도 완치도 개개인에 따라 복불복으로 발현된다는 것에 있다. 마치 그 모든 것들이 '자율'과 '책임'이라는 아득한 거리 사이에 고립돼 있는 듯하다.

뜨거운 여름 한복판, '각자도생'과 '자율 방역'의 간극을 넓히기 위한 현명한 방법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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