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오늘과 다른 내일

[영화觀] 오늘과 다른 내일
  • 입력 : 2021. 07.30(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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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는 매일매일'.

강유가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은 90년대 말 함께 페미니즘을 외쳤던 친구들의 지금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페미니즘. 아니 이 말이 왜 이리 어떤 버튼을 누르는 말이 되어 버린 것일까. 2021년 상반기 가장 어이가 없었던 이슈는 엄지와 검지로 물건을 집는 손가락 모양의 광고 이미지로 촉발된 남성 혐오 논란이었다. 수많은 기업체들의 광고에 쓰인 일상적인 손가락 모양을 마치 발본색원이라도 하듯 찾아내 억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소식들이 매일 아침 새롭게 등장하곤 했다. 여성 혐오라는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적 과제 앞에서, 그것을 조금도 풀어나가고자 하는 노력 없이 초래된 어처구니없는 백래시 그 자체였다. 페미니즘이라는 말만 들어도 질색 팔색을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아니 늘어난다기 보단 가시화되고 있다는 말이 맞겠다. 그들은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즉각적인 분노와 비아냥을 쏟아낸다. 문제는 페미니즘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이러한 반응이 불장난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견디지 못하는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이 땅에서 페미니즘은 어떻게 뿌리내리기 시작했을까.

 '우리는 매일매일'은 함께 살아가는 곳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찾기 위해 애썼던 20년 전의 영 페미니스트 여섯 명의 과거와 지금, 그리고 미래를 담고 있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졌고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그때도 지금도 페미니스트로 살아간다. 학생이었던 친구들은 이제 수의사로, 지역 활동가로, 사회적 협동조합의 중역으로, 성폭력 상담소장으로 그리고 뮤지션과 영화감독으로 현재의 삶을 지켜가고 있다. 이 땅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영화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들려준다. 성차별과 폭력, 억압이 만연했던 매캐한 공기 속에서 온몸과 마음으로 살아내던 20대 초 중반의 여성들.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마주 보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로 살아가는 내일이 조금 더 안전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쉽지 않은 길에 발을 내딛는다. 당연히 그래야 했던 것들에 질문을 하고 답을 주지 않는 세상에서 스스로가 답을 찾고자 손을 잡고 어깨를 맞댄다. 페미니즘은 여성주의 이론이자 운동이고 누군가의 삶이자 더 나은 세상의 모두를 위한 태도이자 규칙이다. 이들의 삶이 무언가를 누구보다 더 얻으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누군가는 자신의 무언가를 빼앗긴 것처럼 펄쩍 뛴다. 흥미로운 것은 그 펄쩍 뛰는 오버 액션이 비단 여성을 향해서 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화살과 비난이 소수자로 살아가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라는 점에서 오버 액션은 불쾌하고 볼썽사납다. 오버 액션의 장인들은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주장하는 시위 앞에서 클랙션을 세게 누르고,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는 도리질을 치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원하냐고 혐오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의 안전 구역을 조롱하고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열과 성을 다해 부정한다. 결국 내 것이 빼앗길까 두려워 남을 내치는 것이 삶의 목표라면 그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삶인가. 내가 인정하는 사람과 내가 탐하는 욕망과 내가 믿고 있는 가치가 절대적인 이들에게 사회는 그저 나를 비춰줄 쇼윈도에 불과하지 않을까.

 나 역시 페미니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 알아가야 하는 길이 많고 멀다라고 인식하는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모르면 배우면 되지 않을까. 지하철 노선도를, 처음 보는 언어를, 낯선 이의 마음은 배움 말고는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작가 요조의 책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는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가까워지지 않는다면 공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여자도, 남자도, 장애인도, 성 소수자도 아닌 그냥,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 유토피아를 건국하자는 말은 아닐 것이다. 모른다는 말로 다가설 때, 모른다는 인식으로 배움을 시작할 때 우리가 만날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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